보조금 '제로'…정부 지원 없는 도서전
참가사 15% 줄어도 관람객 2.5배 늘어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10권 구매 감사합니다.”
26일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 서울 성수동에서 볼 법한 힙(Hip)한 팝업스토어처럼 꾸며진 출판사 안전가옥 부스에서 10여 명의 직원들이 한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쳤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지자 홍가비(27) 씨가 민망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날 SF 소설을 대거 구입한 그는 “대형 출판사에서만 낸 책 위주로만 알고 있었는데, 도서전에 와 보니 확실히 그동안 접하지 못한 다양한 책을 추천받을 수 있었다”며 “그래서 책도 평소보다 더 많이 사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로 66회째를 맞은 국내 최대의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이 26~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올해는 19개국 452개의 참가사가 모여 전시, 강연, 세미나, 이벤트 등 450여 개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참가사는 15%가량 줄었지만,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발걸음으로 첫날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측은 “관람객 수가 아직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지만, 사전 예매율로만 보면 최소 5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 명)에 비해 2.5배 늘었다”고 전했다.
도서전 한쪽에는 올해 주제인 ‘후이늠’에 대해 새롭게 사유할 수 있도록 주목한 400권의 도서 전시가 설치돼 있었다. 후이늠은 걸리버가 네 번째 여행지에서 만난 나라다. 완벽한 이성을 가진 ‘말(馬)’이 사는 이곳에는 무지, 오만, 욕망, 비참, 전쟁이나 다툼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올해 처음 도서전을 방문했다는 채지아(25) 씨는 “큐레이팅 된 책을 비교해 읽는 경험을 하면서 나의 후이늠에 대해 조금 더 발견해 보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도서전의 얼굴격인 주빈국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출판 관계자들은 도서전 기간 도서 전시, 공연, 드로잉 등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진 독특한 문화유산과 예술을 소개했다. 아랍 작가로는 최초로 2019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오만의 조카 알하르티, 15년 만에 신작 ‘사라진 것들’을 출간한 앤드루 포터, ‘H마트에서 울다’의 저자인 미셸 자우너 등의 강연도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한편 이날 개막식에서는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축사 도중 대한출판문화협회 임원진 10여 명이 정부의 예산 지원 중단에 반발하는 묵언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문체부가 등돌린 도서전 독자들이 살립니다’, ‘책 버리는 대통령 책문화 짓밟는다’, ‘검찰식 문화행정 책문화 다 죽는다’라고 적힌 어깨띠를 몸에 둘렀다. 김건희 여사가 직접 축사를 하고 박보균 문체부 장관이 참석한 지난해 도서전 개막식과는 완전히 달라진 기류다.
이번 도서전은 행사 수익금 반환 여부를 둘러싼 정부와 출판계 간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채 열리는 첫 행사다. 양측이 극단적으로 대립한 상황에서 개최되다 보니 국가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진행됐다. 해마다 도서전은 총 40억 원의 비용이 드는데 그간 정부가 7억7000만 원 정도의 보조금을 지원해왔다. 전 제1차관은 “올해 정부는 도서전을 주최하는 출협이 아닌, 출판사를 직접 지원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