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 박사의 호르몬 미술관] 갑자기 닥치는 혈관 안의 폭풍우
‘후지산 정상 아래의 뇌우’ (가쓰시카 호쿠사이, 1832)
[안철우 박사의 호르몬 미술관] 갑자기 닥치는 혈관 안의 폭풍우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만성질환, 바로 고혈압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고혈압으로 내원하는 환자가 2016년에서 2020년 사이에 82만명이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고혈압이 무서운 이유는 당뇨병이나 대사증후군과 마찬가지로 합병증을 동반하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은 ‘후지산 정상 아래의 뇌우’입니다. 푸르스름한 산맥을 뚫고 하늘을 찌르듯이 치솟은 후지산의 모습입니다. 언뜻 보기에 평이한 풍경화로 보이는 이 그림을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불그스름한 뇌우입니다.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는 하늘과는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뇌우가 땅에서 솟아나 하늘로 울려 퍼지면 후지산 일대는 쑥대밭이 될 겁니다. 사람들은 소중한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기겠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새파란 하늘과 땅속에서 들끓는 에너지는 우리에게 긴장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그림을 그린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일본 에도시대에 활약한 목판화가입니다. 총 3만 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그는 생전에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그림에 담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요. 일본의 판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후가쿠 36경’으로 유명합니다. 특이하게도 클로드 모네, 반 고흐, 르누아르 같은 서양 화가들이 호쿠사이의 작품을 극찬했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간혹 드라마에서 보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뒷덜미를 붙잡고 쓰러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고혈압은 건강상의 문제로 생기기도 하지만, 욱하는 분노와 스트레스로 발병하기도 합니다. 콩팥에서 분비되는 혈압 호르몬 레닌은 콩팥의 혈류량에 따라 분비량이 달라집니다. 혈류량이 적어지면 레닌이 많이 분비되고, 혈류량이 증가하면 레닌의 분비가 억제되지요. 이런 방식으로 혈압이 조절되는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고혈압을 진단받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건너서 아는 지인은 고혈압을 진단받고 고혈압 약제를 복용했습니다. 그런데 약으로 혈압이 조절되지 않아 더 강한 약을 처방받았지요. 그렇게 강한 약을 복용하다가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문제가 호르몬이라는 것을요. 이런 경우를 본태성 고혈압이 아니라 이차성 고혈압이라고 합니다. 그 지인은 가족 내력이 문제가 아니라 부신피질에 종양이 생겨 알도스테론이 과잉 분비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처럼 갑상선호르몬, 성장호르몬, 알도스테론, 코르티솔, 카테콜아민 등 고혈압을 유발할 수 있는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고혈압 약제만 복용하지 말고 호르몬적인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혈관 건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나트륨 식단을 선택해야 하고, 상처가 난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식품을 먹어야 합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