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하나 송치에 평균 1년 소요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기술유출사범 검거 건수는 149건으로 2021년(89건) 대비 67% 증가했다. 특히 해외 유출 사범이 같은 기간 9건에서 22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방첩경제안보수사는 일반 경제사건 대비 기본적으로 사건 난이도가 높은 데다, 사건 참고인인 피해기업측의 소극적인 참여로 인해 경찰 등 수사기관이 애를 먹는 분야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에서 서울 ‘빅 5’중 한 병원의 산하 연구소에서 심혈관 중재 시술 보조 기술을 비롯해 첨단 의료 로봇 기술 파일을 중국으로 무단 반출한 중국인 유학생 연구원을 입건하고 조사할 당시, 참고인인 해당 연구소 관계자들이 단 한 차례도 경찰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아 경찰이 매번 직접 연구소로 찾아가야만 했다.
이 사건 뿐만 아니라 경찰이 초기 기술유출 정황을 인지하고 수사에 나서려는 많은 경우, 피해기업은 기업 평판의 저하 및 주가 하락 등의 이유로 협조를 잘 안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기술유출 트렌드로는 문서나 기술을 유출하지 않고, 특정 직무능력을 가진 인재를 빼내 해당 기술과 관련 없는 페이퍼컴퍼니에서 채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하면 이직한 직원은 전직 금지 기간을 회피할 수 있다. 반면 경찰 등 수사기관은 이직한 회사에서 해당 직원이 전 직장에서 하던 일을 하고 있는지를 규명해내야 하는데, 여간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현직 수사관들은 입을 모은다.
한 안보수사 경찰관은 “산업기술유출은 사건 하나 송치하는데 평균적으로 1년 걸릴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분야”라고 언급했다.
경찰이 어렵게 수사해 송치하더라도 실적을 홍보하는데 장애물이 있다. 특히 국내 기업간 유출인 경우 가해기업 측에서 경찰을 향해 ‘피의사실 공표’라며 고소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해기업측이 펼치는 논리는 ‘재판으로 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겨우 경찰 수사 마무리 단계에서 유죄인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중국 등 해외 소재 기업일 경우 현장을 압수수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도 수사를 어렵게 한다. 유출 직원이 해외 이메일과 해외 클라우드를 써서 기술을 반출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경찰 내부에서도 산업기술유출 등을 담당하는 방첩경제안보수사계는 대표적인 ‘3D’ 분야로 정평나 있다. 최첨단 포렌식장비를 써도 결국 수사는 기본적으로 ‘노가다’를 포함한다.
한 경찰 간부는 “그렇다고 직원들이 하기 싫은데 끌려온 것은 아니다. 나름 역량 있고, 이쪽으로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 수사관들이 오지만 언제까지 개인의 사명감에만 호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수사가 갈수록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직원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수사 실무에 개선이 기대되는 부분도 분명 있다. 특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를 기다리는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산업기술보호법)’에서 처벌을 위한 구성요건을 ‘목적’에서 ‘고의’로 넓히는데, 이렇게 되면 이전보다 경찰의 혐의 입증에 수고가 덜 들 수 있다.
지금은 기술을 고의로 빼내 해외로 건넸다고 해도 ‘외국에서 사용할 목적’을 갖고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개정안은 고의성만 인정되면 처벌할 수 있다. 특히 미필적 고의까지 넓게 인정되면, ‘집에 가져가서 잔업을 하려 했다’는 식의 변명도 안 통하게 될 전망이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