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으로 한동안 주춤하던 의정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모습이다. 정부는 총선 결과와 관계없이 의료개혁 의지를 다시 천명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료계의 집단행동 중단과 대화를 촉구한 것은 이같은 정부 입장에 대한 재확인이다. 반면 의료계는 여당의 총선 패배로 정부의 의료개혁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며 더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쟁점이 되고 있는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 ‘원점 재검토’ 또는 ‘1년 유예’를 거듭 요구하며 압박 강도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의료 시스템 공백으로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비극이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고 있다. 의정갈등이 길어지면서 국민들이 겪는 불편과 고통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사태를 속히 수습하고 의료 시스템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료계가 당장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벌어진 틈은 좀처럼 메워질 것 같지 않다. 되레 의료계는 여당의 총선 패배는 ‘의료개혁을 거부하는 국민의 심판’이라고 주장하며 더욱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간 접점 찾기가 더 요원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번 총선에 반영된 민심은 ‘민생’과 ‘협치’라 할 수 있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여야가 협력하고 민생을 챙기라는 것이 민심의 준엄한 요구다. 여당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민생에 전념하는 것이 총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 역시 더 겸허한 자세로 민의를 받들어야 하며 그 답은 오직 민생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당면한 최대 민생 현안이며 여야가 함께 풀어나가야할 협치의 첫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의료계와 시민사회, 여·야·정이 참여하는 ‘보건의료 개혁 공론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사회적협의체’ 구성에 더 무게를 두는 듯하며 선을 긋고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특위가 됐든, 협의체가 됐든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야 정치권이 함께 주도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정치적 이해와 당파를 초월해 여야가 힘을 합하면 극복하지 못할 난제는 없다.
무엇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숫자에 구애받지 말고 의료개혁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의료계는 총선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보다는 정말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