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테헤란 시내의 한 상업 지구에서 길거리 환전소에서 한 시민이 지폐를 세고 있다. [AP] |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핵합의 파기 후 안보 환경이 악화하면서 이란의 통화가치가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2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이란 리알화는 이날 한때 달러당 61만3500 리알까지 치솟았다.
이란 통화가 외환시장에서 이처럼 낮은 수준으로 거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알은 이달 18일까지만 하더라도 달러당 59만 리알 정도였다.
일단 며칠간 닥친 환율 급등의 원인으로는 이란의 설날 격인 '노루즈'의 영향이 거론된다.
이란은 춘분을 새해 첫날로 삼아 보름 정도 긴 연휴를 보는데 올해 노루즈는 3월 20일부터 4월 2일까지다.
올해에도 많은 이란인이 해외여행을 위한 달러나 유로를 구하려고 환전소에 쇄도해 리알 공급이 급증했다.
먼 과거까지 돌아보면 리알 가치는 요동치는 중동정세에 맞물려 10년도 안 돼 20분의 1 정도로 급락했다.
통화가치는 근본적으로는 해당 통화와 외화의 교환 비율이지만 발행국의 신용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안보여건이 개선되면 통화가치가 상승하지만 거꾸로 분쟁 위기가 닥치는 등 긴장이 고조되면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란이 2015년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을 체결했을 때 이란 통화가치는 달러당 3만2000리알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6개국은 해당 합의를 통해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대가로 대이란제재를 완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이란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제재도 복원했다. 후임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합의 갱신을 추진하다가 이란과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사실상 포기했다.
이란과 미국의 이 같은 갈등 속에 안보환경이 악화하면서 리알화 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리알 가치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란의 대러시아 무기지원,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과 맞물려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작년 2월 달러당 60만 리알을 찍은 뒤 43만9000 리알 아래를 유지하다가 이날 신기록을 썼다.
통화가치 급락은 이란 시민들의 일상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가격이 물가를 밀어올리면서 노동자는 실질임금 삭감으로 살림살이가 쪼들리게 된다.
자산을 현금으로 은행에 차곡차곡 쌓아뒀다면 평생 저축한 가치의 상당 부분이 증발할 위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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