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협력·기업 진출 기반 마련
北, 외교무대서 고립 심화될 듯
한국과 쿠바가 14일(현지시간) 공식 외교 관계를 맺었다. 쿠바가 북한의 핵심 우방국인 만큼 양국 간 협상은 극비리에 진행됐고 이날 깜짝 발표하면서 국제사회도 이목을 집중했다. 중국과 러시아와 밀착하며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려던 북한의 외교는 더욱 고립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3면
한국과 쿠바 외교부에 따르면 양국은 이날 미국 뉴욕에서 유엔 대표부가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했다. 중남미 카리브 지역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이었던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으로 기록됐다. 유엔 회원국 중 남은 미수교국은 시리아 한 곳 뿐이다.
양국이 그동안 관계 개선을 위해 협의를 이어왔지만, 수교가 합의에 이를 정도로 진전된 상황은 극비리에 부쳐졌다. 북한과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관계를 이어온 쿠바 측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북한의 방해를 최소화해 양국 간 수교가 합의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24년 숙원 한-쿠바 수교, 극적 성사 배경은=쿠바는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했지만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한 이후 양국 간 교류는 단절된 상태였다. 쿠바는 1960년 북한과 수교하고 ‘참호를 공유한다’는 특수 관계를 유지해 왔다. 쿠바가 1988년 서울올림픽에 불참하면서 북한과 더욱 밀착, 우리와는 더욱 멀어졌다.
1999년, 한국이 유엔총회의 대(對)쿠바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지면서 양국 관계가 전환점을 맞이한다. 양국 간 경제·문화 교류가 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쿠바에 직접 수교를 제안했고 카스트로 형제의 통치가 종식되면서 북한과 쿠바의 관계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부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공식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했다. 당시 북한 김영철 등은 직접 쿠바를 찾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며 견제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수교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정부는 다자회의가 있을 때마다 수시로 쿠바의 문을 두드렸고, 이태원 참사 당시 쿠바에서 위로 전문을 보낸 것이 전기가 됐다고 한다. 외교부 중남미 국장이 쿠바를 직접 방문해 장관 명의의 친서를 전달해 사의를 표했고, 지난해 5월에는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과테말라에서 열린 카리브국가연합(CAS) 정상회의 참석에 참석하면서 호세피나 비달 쿠바 외교 차관과 만났다. 이후에도 뉴욕의 주유엔 대표부 채널, 멕시코 주재 대사관 채널 등 비공식 채널을 가동해 협의를 이어온 끝에 24년 숙원인 양국 국교 수립이 타결됐다. 양국은 상호 상주공관 개설 등 수교 후속조치를 협의할 예정이다.
▶한류가 이끈 우호관계...경제협력 확대 기대=정부는 최근 한국 드라마와 K팝 등 한류가 현지에서 인기를 끌고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쿠바가 인기 관광지로 조명받으면서 상호 우호인식이 확산된 것도 이번 수교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현지에서는 약 1만명 규모의 한류 팬클럽 ‘ArtCor’가 운영되고 있다.
외교부는 이번 수교로 양국 간 경제협력 확대와 우리 기업 진출 지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양국 간 실질협력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2년 양국 교역규모는 수출 1400만달러, 수입은 700만달러를 기록했다. 코트라(KOTRA)는 2002년 쿠바와 처음으로 무역투자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2005년에는 쿠바 수도 아바나에 무역관을 개설했다.
정부는 쿠바를 방문하는 우리 국민들에 대한 체계적인 영사조력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까지 연간 약 1만4000명의 한국인이 쿠바를 방문했다. 현재 쿠바에는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이주한 한인 후손 11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다만 관광 목적으로 쿠바를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2021년 1월 이후 쿠바를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전자여행허가제(ESTA)로 미국에 입국하려할 경우 거부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쿠바는 미국 정부가 지정하는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있다.
▶‘형제국’ 쿠바의 변심...北고립 심화=한-쿠바 수교로 우리나라와 수교하지 않고 북한과 단독 수교한 국가는 기존 세 곳에서 팔레스타인, 시리아 2곳으로 줄었다. 우방국과 ‘반미(反美) 노선’을 형성하는 데 주력해 온 북한의 외교가 고립될 전망이다. 올해 에두아르도 루이스 코레아 가르시아 신임 주북 쿠바대사가 부임하는 등 양국 관계를 과시해 왔다. 코로나19 이후 북한이 주북 대사의 신임장을 받은 것은 중국, 몽골에 이어 쿠바가 세 번째였다.
국제사회도 양국 외교관계 수립에 주목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이 북한의 냉전 시대 동맹국 중 한 곳인 쿠바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는 사실을 부각했다. AFP통신은 쿠바 싱크탱크인 국제정책연구센터의 2021년 연구자료를 인용해 “최근 몇 년간 한국과 쿠바는 자동차, 전자 제품, 휴대전화 산업에서 중요한 사업 관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은 자국 외교관계의 성격을 결정할 주권이 있으며 위는 이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국가가 양자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에 환영한다”고 미국의 소리(VOA)가 소개했다. 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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