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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전략적 선견지명의 필요성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변하고 있다. 인구 통계학적으로 세계 인구가 10억명에 이르는 데는 수천 년이 걸렸다. 인류는 19세기초에 10억명 선을 통과했다. 그런데 겨우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빠르게 80억명에 접근하고 있다. 데이터 경제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현재 거의 60억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연결돼 있다. 이 혁명이 본격화된 것은 겨우 20~30년 전인데 말이다. 과거 2만년 동안 생산된 양보다 더 많은 데이터가 1년 안에 생성되고 있다. 경제가 고도화되는 과정, 대중 토론의 장이 형성되는 방식, 새로운 경제·군사적 경쟁의 영역으로서 사이버 공간의 부상 등 기하급수적 변화의 예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어디를 둘러보나 급속한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런 변화 속도는 와해(disruption)가 영속적으로 일어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세계는 쉼 없이 변화 중이다.
물론 이 변화 과정을 견인해 온 가장 큰 요인은 기술 혁명이다. 기술이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대략 파악하지 못한 채 세상을 이해하기란 더는 불가능하다. 우리 시대의 가장 파급력 있는 기술로는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신경기술, 분산 컴퓨팅(클라우드와 엣지), 차세대 소재, 클린테크(clean tech·핵융합 에너지 등), 로봇 공학의 진보, 블록체인, 그리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기술들은 모든 산업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산업을 낳으며, 또 어떤 산업들은 도태시킬 것이다. 이런 기술 중 하나에 기인한 변화만 연구하는 데도 평생이 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결합하면, 그 변화는 기하급수적이고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AI를 예로 들어보자. AI 회사와 제품에 대한 투자는 매년 50% 가까이 증가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발달은 이제 법률 서비스, 사무직, 각종 창조 산업을 비롯해 경제의 전 부문을 와해시키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지금 존재하는 일자리의 60%가 어떤 식으로든 AI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기업과 정부가 변화의 기하급수적 성격을 인식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변화의 속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변화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변화가 기업, 사회 그리고 개인에 미치는 심원한 영향을 파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점을 깨달으면 선형적 예측 모델로는 부족하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그 보다는 변화의 전체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지식은 과거를 회고해 구축된다는 우리가 가진 생각은 그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수 세기 동안 인류는 지식을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습득하는 무언가로 여겼다. 학문의 이런 ‘회고(looking back)’ 개념은 오늘날에도 물론 가치가 있지만, 그 정도는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15세기에는 그보다 200년 전 사람들이 파리에서 로마까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이해하는 일이 무척 유용했다. 이동방식은 15세기에도 거의 바뀌지 않았고, 가까운 미래에 크게 변하리라고 예상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인류가 가진 과거에 대한 지식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미래에 대해 줄 수 있는 통찰은 얼마 되지 않는다. 다양한 잠재적 미래상을 탐구할 수 있는 학문, 즉 예측 학문의 개발이 절실하다. 이것이 바로 선견지명의 핵심이다.
여기서 명심할 점이 있다. 전략적 선견지명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구성해 보고 그것들을 탐구할 전략을 짜는 일이다. 가령 AI의 진보에 따라 기업들은 이 신기술이 자신들의 사업에 미칠 영향은 물론이고 실직, 윤리적 딜레마, AI가 몰고 올 새로운 규제 마련에 대한 압박 등 그 사회경제적 여파도 예측해야 한다. 기업들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시나리오들의 지도다.
빠른 사회적, 기술적 변화와 미증유의 세계적 상호의존성으로 대변되는 현재 상황에서 미래의 시나리오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점점 더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전략적 접근방식으로서 선견지명은 불확실성의 관리, 다양한 미래 모습의 탐구, 도전과제와 기회의 파악, 그리고 선제적 적응을 위한 핵심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선견지명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파악하고, 조직들은 기회를 활용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비를 할 수 있다. 또한, 선견지명을 바탕으로 전략적 혁신을 촉진하고, 정보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개선하며, 위기 상황에서 회복 탄력성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성공하길 바라는 기업이라면 전략적 선견지명 능력을 배양하고 그것을 내부의 의사결정 기구에 내면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제 막 일어나기 시작한 단계다. 물론 전략 수립의 핵심은 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 속도는 거의 모든 차원의 의사결정에서 선견지명의 내재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점은 특히 기업의 미래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공간인 이사회와 경영위원회에 특히 중요할 것이다. 많은 경우, 선견지명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수익에 반하는 제한이나 결정이 요구될 것이다. 기업들이 이 충고를 따를 것인가는 그들이 선견지명에 근거한 통찰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기업들은 앞으로 큰 위험을 맞닥뜨릴 것이며, 신기술에 따른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놓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선견지명이 적용되는 사례를 들어보자. 미국·중국 관계가 악화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충돌의 기저에는 기술이 자리잡고 있음도 자명하다. 양국이 경제의 최첨단 분야(기본적으로 AI, 양자 및 사이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리스크에 대비하지 못하는 기업과 정부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두 나라의 관계가 어긋나 미·러 관계 혹은 유럽-러시아 관계처럼 나빠지면서 양국 간에 제재가 난무하고 무수한 외교적 마찰이 발생하는 미래가 올 수도 있다. 고래 싸움에 휘말린 기업들이 막대한 대가를 치렀듯, 미·중 갈등으로 그런 기업들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새로운 리스크에 대해 진지한 선견지명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변화의 기하급수적 성격은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전략적 선견지명이라는 개념은 지금과 같은 영속적 와해의 시대에 깊은 울림을 준다. 기업, 정부 그리고 개인은 단순히 변화에 반응할 것이 아니라, 변화를 예측하고, 변화의 형성에 적극 참여하며, 불확실성에 맞서 회복 탄력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미래로 가는 여정에서, 전략적 선견지명은 21세기의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지형 위로 난 길을 비추는 등불이다.
마누엘 무니즈 스페인 IE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