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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속살해’ 잇따라도…법 개정 느려 통계조차 ‘부실’
형법상 ‘존속살해’ 가중처벌 조항 있지만
비속살해는 일반 살인죄 적용…개정 논의
형법 개정안 5건 발의됐지만, 논의 미비
[헤럴드DB]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속살해’ 사건이 반복되는 가운데, 이를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 개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비속살해라는 죄목이 없는 탓에 범죄예방 대책 마련의 기초 단계인 통계 관리조차 부실한 상황이다. 가족을 파괴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해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서울과 울산, 광주 등에서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거나 살해 후 극단 선택을 시도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울산에서는 지난 1일 40대 가장이 아내와 고등학생·중학생 두 아들을 살해한 뒤 극단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고, 서울 은평구에서는 지난달 22일 30대 여성이 중증 장애인인 8세 아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홀로 살아남아 긴급 체포됐다. 또 최근 광주에서는 술 취한 20대 엄마가 부부싸움을 한 뒤 생후 6개월 딸을 아파트 15층에서 던져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이나 과도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범행이 반복되면서 사회적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되는 추세다.

다만 현행법이 이 같은 사회적 인식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범죄에 대해 별도의 정의가 없는 것은 물론, 경찰청의 범죄통계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에 대해선 반인륜적 범죄라는 측면에서 가중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회에는 직계비속에 대한 살해를 존속살해와 마찬가지로 가중처벌하는 형법 개정안 5건이 발의됐지만 논의는 멈춰 있는 상태다. 현재 형법상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할 경우 ‘존속살해죄’를 적용받아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직계비속에 대한 살인 등 강력범죄를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규정한 일반 살인죄를 적용받게 된다.

21대 국회 들어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구자근·이태규·정경희·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형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 회부된 채 계류돼 있다. 개정안들에는 공통적으로 직계비속에 대한 살해죄를 신설하고 가중처벌함으로써 가족 공동체를 파괴하는 반인륜적 행위를 제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범죄에 대한 별도의 통계도 잡히지 않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현행법상 죄목별로 통계를 관리하다보니 부모의 자녀 살해를 기준으로 따로 잡히는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일반 살인 사건 중 피의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구분해 비속살해를 별도로 관리할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통계 시스템에는 피의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친족’ 등으로만 분류, 관리되고 있어 부모와 자녀 간 관계를 따로 분류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회적 인식 변화에 발 맞춘 법 개정 논의가 촉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내년 국회의원 임기가 만료되면 개정안들이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자동폐기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모가 자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비판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은 만큼 가중처벌 도입 여부에 대한 국회 논의도 빨라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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