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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R&D 대혁신과 수월성 확보

군사·경제의 주도권을 두고 두 진영이 첨예하게 다투던 과거의 냉전에 비해 오늘날 첨단 기술 확보에 방점이 찍힌 기술패권 경쟁은 가히 신냉전이라 부를 만하다. 우리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이차전지 등은 기술패권 경쟁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국회가 이러한 절실함을 담아 지난 3월 제정한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은 9월 22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실질적 성과 창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더해 기술 육성 주체들의 혁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주도권 다툼이 치열한 분야의 경쟁에 임할 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월성(秀越性)을 확보해야 한다. 초격차 기술을 선점한 소수의 기업이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시장을 독점한다. 즉 2위, 3위를 노리는 추격자 전략이 아니라 글로벌 1위를 지향하고 1위 달성 후에는 격차를 벌리는 최고 수준의 수월성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혁신과 도전이 가능한 연구·개발(R&D)로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성공 가능성이 큰 익숙한 연구 주제와 기존의 성과를 소폭 개선하는 데에 몰두하는 것은 아닌지 진단해봐야 한다.

우리가 우위를 선점하고자 하는 기술 자체의 수월성도 중요하지만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야 한다. 주요국들과 균형 잡힌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협력 대상국의 과학기술 경쟁력 분석, 경제·안보, 통상·외교의 상관관계 분석 등을 면밀하게 수행해 우리의 강·약점을 분석하고, 이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테크 인텔리전스 역량을 갖춰야 한다.

우리 연구·개발 주체들이 전략기술 확보를 위한 글로벌 수준의 혁신적 R&D를 수행하게 하려면 양적 증가 중심의 R&D 시스템을 혁신·도전 중심의 선도형 R&D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초일류 경쟁력 확보가 필요한 전략 기술 분야에서는 국내 연구자가 해외 최고 수준의 연구자와 마음껏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미-중 경쟁에 따른 기술블록화 추세에서 나 홀로 연구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국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예산 확대뿐만 아니라 해외 연구자나 연구기관과 장비, 연구비 등을 상호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정책적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정부의 급격한 R&D투자 확대에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 혁신은 다소 미진해 R&D예산의 비효율성이 발생했다는 지적에는 일리가 있다. 차제에 정부 R&D 지원 시스템 전반을 신속·유연하게 정비하고, 도전·혁신적 연구 분야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 전략 기술 분야, 수월성을 확보할 수 있는 도전·혁신적 분야에 예산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예산 배분·조정 체계가 도입돼야 한다. 긴급을 요하는 도전적 연구가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R&D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과거의 성공 사례에 안주해서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시대다.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R&D도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집중하며 스스로 혁신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정병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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