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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상봉터미널’…“통학하던 버스였는데”
상봉터미널 30일 폐업 예정
12월부턴 임시 정류장 이용해야
“자주 이용하던 곳…임시정류장도 곧 없어질까 두려워”
31일 상봉터미널에 폐업 공지가 붙어 있다. 정목희 기자.

[헤럴드경제=정목희·박혜원 기자] “매표소 직원한테 사려고 현금만 들고 왔는데 기계밖에 없으니 막막하네요”(중랑구 거주 70세 조모 씨)

원주에서 출발한 버스가 9시께 상봉터미널 승·하차장에 도착했다. 버스에 손님이 5명 정도 내렸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황모(67) 씨는 근처 절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한다. 황씨는 “동서울터미널은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른다. 어떻게 이용하는지”라며 “(상봉터미널이) 자주 이용하던 곳이고, 오후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좀 이용하는 편인데 아쉽다. 임시 정류장이 설치된다 해도 그것마저도 또 없어지면 어떡하나 무섭다”라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이 폐업을 앞두면서 해당 터미널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아쉬워하거나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근처에 임시 정류소가 들어선다고 해도 그마저도 금방 사라질까 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최근 찾은 상봉터미널에는 건물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직원들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터미널 입구에는 손님들에게 폐업 예정과 근처 임시 정류장이 설치될 것을 알리는 공지문이 묶여 있었다. 그 위에는 자동차운전학원 간판이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캄캄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창구 문이 닫힌 매표소가 나왔다. 직원이 없어서 기계가 발권을 대신하고 있었는데, 매표소 옆에는 원주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발권할 수 있는 키오스크 한 대가 있었다. 운행시간 표에는 원주·문막으로 가는 행선지밖에 없었는데, 승차 시간은 7시, 8시, 10시 30분, 오후 2시, 5시, 8시로 총 6개 뿐이었다.

터미널 대합실은 본래 1층에 있었으나 반지하층으로 옮겨졌으며, 버스도 그곳에서 출발하고 있다. 반지하층은 본래 하차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지금은 승·하차 모두 이곳 대합실에서 진행하고 있다.

상봉터미널 지하1층 승차장에 원주행 노선과 폐쇄된 노선인 광주·대전행 승차장이 있다.

승·하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대합실엔 구식 의자 수십 개와 TV 한 대가 설치돼 있었다. 간혹 원주와 상봉을 왕복하는 고속버스 한 대가 주차장에 세워졌다. 그곳에서는 폐쇄된 노선인 광주·대전 승차장이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동 인구가 많을 시간인 아침 9시임에도 대합실 좌석에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지하 승차장에는 매점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광명상회, 털보식당, 우정식품 등이 모두 셔터 문을 내리고 있었다. .

1985년 문을 연 상봉터미널은 서울과 경기 동·북부, 강원지역을 이었으며, 1980년대 말까지 시외·고속버스가 하루 1000개 넘게 운행하고 하루 이용객도 2만명 이상이었다. 하지만 1990년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동서울터미널이 생기면서 상봉터미널은 점차 이용객이 줄었다. 이에 1997년 상봉터미널의 운영사인 신아주㈜가 사업면허 폐지를 신청했고, 서울시와 행정소송 끝에 2008년 대법원에서 사업면허 폐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오는 30일, 상봉터미널이 폐업한 후에는 2027년까지 지상 49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모(26) 씨는 원주에 있는 학교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졸업반이라, 수업이 별로 없어서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버스를 탄다”며 “(터미널이) 임시 정류장으로 대체되는건 조금 아쉽지만 이제 곧 졸업이라 터미널에 올 일이 별로 없을 예정이라 괜찮다”고 말했다.

중랑구에 사는 조모(70) 씨는 오랜만에 터미널에 왔으나 매표소에 사람이 없어 당황하고 있었다. 조씨는 “매표소 직원에게 표를 사려고 현금만 들고 왔는데 기계밖에 없으니 뭘 할 수가 없다”며 “원주에 아는 사람이 있어 물건을 전달 받으려고 가는데 터미널에 이렇게 사람이 없으니 표를 살 수도 없고 하니 기사 아저씨에게 현금으로 요금을 낼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말하며 버스에 올랐다.

신아주 소속 직원이자 터미널 관리자인 A(55)씨는 “하루에 두 번 대전 가는 노선도 있었는데 이 노선은 3월까지 운행하고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지난 4월부터는 운행이 중단됐다”며 “현재 원주·문막 가는 버스만 남아있는데 폐업 후에도 상봉터미널 부지만 없어지고 앞에 임시 정류장이 생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A씨는 “현재도 운영이 적자인데, 그나마 터미널 건물에 있는 운전학원과 경륜장이 내는 임대료와 가끔 이용하는 시민들이 내는 버스 요금으로 메우는 상황이다”라며 “예전에는 원주에서 휴가 나온 군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터미널이었지만 지금은 대학생과 직장인 정도만 이용하고 있고, 하루 평균 20명 안팎이 이용 중이다”라고 전했다.

국토교통부와 전국터미널사업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폐업한 터미널은 30개소였다. 이중 전남 지역이 10개소로 가장 많았으며, 경북 6개소, 경기가 4개소였다.

mokiy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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