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경보음이 울린지 오래지만 강도가 갈수록 세지고 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29일 당·정·대 고위협의회에서 젊은 층의 ‘영끌’ 대출·투자의 위험성을 언급하면서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9일 공개한 기자간담회 녹취록에서 “한국의 나랏빚 줄이기는 모범적인 반면 가계부채 비율은 가처분소득 대비 평균 1.6배에 달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예전처럼 1%대 금리를 기대하며 레버리지(빚)해서 주택에 투자하는 것에 경고를 드린다”며 ‘빚투’의 위험성을 알렸다. 안팎에서 가계대출 부실이 한국경제의 새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전체 가계 빚은 지난해 3분기 1871조108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후 금리 인상 여파에 올해 1분기 1853조2563억원까지 줄었지만 2분기(1862조7809억원)에 다시 늘었다. 이후 가계대출은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26일까지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과 비교해 2조4723억원 늘었다. 현재 추세대로면 한 달 증가폭으로 2021년 10월(3조4380억원) 이후 2년 만에 가장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택시장 영향이 크다. 주택 가격이 이미 바닥을 찍었다는 심리에 가을이사철까지 겹치면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이어졌다. 정부가 가계대출을 더 조일 조짐을 보이자 ‘대출 막차 타자’는 일종의 정책 풍선효과도 가세했다.
가계부채 종합대책으로 금리 상승을 예상해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변동금리 스트레스 DSR’ 도입, 특례보금자리론 6억 이하 주택 한정, 전세보증금 대출 엄격 적용 등이 거론된다. 이런 조치들이 효과를 내려면 무엇보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일관적 정책신호가 중요하다. 실제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줄어들던 가계대출은 정부가 부동산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전매 제한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고 전세보증금 반환대출과 특례론 등에 DSR 예외를 허용하면서 다시 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꼽았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도 정부가 특례론을 통해 처음 도입한 상품이었다. 한국은행의 돈줄 죄기(금리인상)를 무력화시켰던 금융감독원의 대출금리 인하 압박도 혼선으로 작용했다.
무리하게 빚으로 떠받친 경제는 사상누각이다. 거품이 터지면 소비위축과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고 한국 경제의 미래마저 어둡게 한다. 가계 빚의 연착륙대책에 더는 엇박자와 혼선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