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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묵 깬 그날의 목소리 “왜 못돌아왔는지 기억해줘”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왜 갔냐”는 지적에 생존자·유가족 소회
“개인·사회 노력 통해 비극 반복 막아야”
26일 서울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참사 1주기를 맞아 공개된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연합]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께 서울 이태원동 소재 해밀턴 호텔 근처 좁은 골목에서 발생한 최악의 재난 상황은 생때같은 159명의 희생자를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곳에 갔다가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당시 사고로 친구와 연인, 가족을 잃은 유가족 등 이 땅에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아내며 무던히 견디고 있다. 바로 지난해 발생한 이태원 참사 이야기다.

출판계에서도 이태원 참사 1주년을 맞아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신간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인 피해자이지만 그간 여러가지 이유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MZ세대 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활자로 남겨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해야 이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창비

▶그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유=MZ세대들이 그간 참사의 직접적 피해자이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신간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낸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소속 유혜정 작가는 최근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20~30대 젊은 피해자들은 현장에서 살아 남았음에도 그간 구조자로서 사회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다”며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2030이 참사에 침묵하게 된 이유를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최초의 인터뷰집인 이 책은 우선 이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놀러가서 피해를 본 애들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사회적 비난을 꼽았다. 참사의 원인이 인파를 통제하지 못한 시스템이나 정책적 허점 때문인데도 마치 MZ세대의 일탈이 문제인 것처럼 몰아가 국가적·사회적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김유진씨(희생자 김유나씨의 언니)는 “사람 목숨에 경중을 나눠서...(중략) 왜 (참사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며 “우리 사회는 참사의 원인이 된 정책적 허점이나 참사 현장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사연에만 집착한다”고 일갈한다. 참사로 남동생 김의현씨를 잃은 김혜인씨도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를 이렇게 기억하면 좋겠다”며 “‘왜 갔느냐’가 아닌 ‘왜 못돌아왔는지’”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들의 개인적인 사정도 한 몫을 했다.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피해자들은 대부분 나만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 그리고 뭘 해도 안될 것 같은 무력감 등 이른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경험했다. 전면에 나서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정신적 고통이 너무나 커 ‘극단적 선택’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참사의 159번째 희생자는 이태원이 아닌 그의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김초롱/아몬드

▶“개인 노력으론 회복 불능”...사회가 바뀌어야=이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태원 생존자들이 입을 열게 된 것은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참사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사 생존자인 김초롱씨는 최근 출간한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책에서 “치료와 상담 등 아무리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결국 바뀌지 않는 사회’는 (개인적인)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인 탓이나 남 탓으로 돌리고 축소하고 무시하지 말고 이제는 좀더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일갈한다.

또 서로 힘든 점을 밖으로 털어놔야 내 안의 응어리도 작아질 수 있다는 공감대도 있다. 이른바 슬픔의 연대를 통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 삶의 목표를 잃어버려 부표처럼 떠돌고 있는 생존자들의 현실 복귀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희생자 이주영씨의 오빠인 이진우씨는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에서 유가족 형제자매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로 “한 달 동안 집에 틀어박혀 우리 가족들끼리만 있다가 유가족들을 만나니 우리 말고 다른 누군가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큰 위로를 받았다”는 점을 들었다.

세월호에 이어 이태원 참사까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형 참사의 고리를 끊고 보다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라도 2030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이태원 참사의 기록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유혜정 작가는 간담회에서 “초기에 이태원 참사가 1989년 미국에서 발생한 힐즈버러 참사와 자주 비교됐다”며 “혐오·비난·불만의 이야기는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바뀌었다’는 재난의 유일한 성취를 오히려 밀어낸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연구를 진행해 이같은 악순환을 끊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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