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초음파 이어 원인 모를 안구건조증엔 '인공눈물'도 전액 환자 부담
내년 적자 이후 2025년 보험료 인상 가능성 높지만 정부 지원은 미달에 늑장
건보공단 '멋대로 투자'로 거액 수수료만 지급·車보험사 환수율은 60%
의대정원 확대 효과 묻자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 "건보 지출 늘어날 것"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건강보험재정이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면서 ‘인공눈물’까지 건보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정작 재정당국은 국민건강보험법상 지원해야 하는 국고보조금을 현재까지 한 푼도 교부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건강보험공단은 20조원이 넘는 거액을 자산운용사에 맡기고 시중은행 예금금리보다 못한 수익률을 거두면서도 50억원이 넘는 수수료를 지급했다. 또, 촘촘하지 못한 행정으로 30억 이상 자산가 수백명이 저소득자로 분류돼 의료비를 환급 받은 일도 있었다. 이에 가입자 혜택을 줄여 건보공단 재정건정성을 확보하기에 앞서 공단의 미숙한 행정 탓에 발생하는 손실부터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6일 국회예산정책처가 향후 10년 간의 건보 재정 추이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건보 재정은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선 후 2028년 지급 준비금이 소진된다. 2032년엔 누적 적자액이 61조6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올해는 수입 93조3000억원, 지출 92조원으로 1조3000억원 흑자를 보지만 내년부턴 지출 증가폭이 수입을 압도하며 1조4000억원 적자로 전환하고, 2032년엔 적자 규모가 20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내년 건보료율은 7.09%로 두고 2025~2032년은 최근 3년(2021~2023년) 평균인 연간 2.06%만큼 보험료율이 높아진다고 가정하고 분석한 결과다. 현행 건강보험법은 월급 또는 소득의 8%이상 보험료율을 올리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2030년엔 보험률이 8%에 도달해 유지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건보재정은 올해 1조9846억원 흑자가 예상된다. 지난 2021(2조8229억원), 2022년(3조6291억원)에 이어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면서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지급 준비금도 25조8547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장기 재정전망이 어두운 것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보험료를 낼 사람이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보험 혜택을 받을 사람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보건당국은 남용이 의심되는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나 초음파 검사 등 건보 적용항목을 대폭 축소하고 있다. 다만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 사례가 ‘인공눈물’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9월 제9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는 ‘원인 모를’ 안구건조증일 경우 인공눈물도 환자가 100% 부담토록 했다. 이에 내년부터 최대 3배 가량 비싸진다.
건보 혜택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반면 2025년 보험료율은 이미 인상이 예고돼 있다. 내년 보험료율은 올해 건보 재정 흑자와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을 의식해 7.09%로 동결했다. 하지만 적자 전환이 예상되는 내년에는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예정처는 건보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려면 2025년 보험료율을 7.46%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건보 재정 부담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현행 법은 정부가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 상당금액’을 국고로 지원토록 하고 있지만, 이는 단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올해엔 건보 예상수입액의 14%수준인 10조9702억원을 건보에 지원토록 했지만, 현재까지 전액 교부되지 않았다는 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밝혀졌다.
재정당국은 2024년 예산 편성에도 건보 지원 예산으로 14% 수준인 12조4284억원으로 편성해 내년에도 법정기준을 맞추지 못한다. 이 뿐 아니라 건보공단 행정 미숙으로 새는 돈도 적지 않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국민건강보험법에 적립금 위탁 운용 관련 뚜렷한 근거 조항도 없이 20조원을 운용사에 맡겼고, 위탁수수료로 53억원을 지급한 사실을 지적했다. 수익률은 작년 예금은행 수신금리 2.77%를 밑도는 2.15%에 되지 않은 것은 물론, 공단에서 직접 운용하는 것보다도 낮은 1%대에 불과했다. 이 뿐 아니라 30억 이상 자산가 336명이 소득수준 하위 10%인 ‘소득 1분위’로 직장가입자로 분류돼 의료비 환급 혜택을 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이들 중엔 재산이 227억원인 이도 있었다.
또, 자동차보험 등 민간에서 지급해야 할 보험급여를 건보가 지급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지난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교통사고와 후유증을 건강보험으로 처리하다 적발돼 환수 고지된 건수는 8만1980건으로 고지금액은 1804억원이다. 그러나 다시 환수한 금액은 고작 1080억원으로 지난해 환수율은 51.8%에 불과했다. 이 탓에 건보 재정을 갉아먹는 것이 과연 가입자 혜택을 늘린 ‘보장성 강화’ 정책이 맞냐는 지적도 나온다. 감사원은 초음파와 MRI 규정 위반 의심 사례를 발견했다며 혈세 1600억원이 샜다고 주장했다. 이 후 이 혜택들은 건보 재정 낭비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정작 이는 지난해 진료비(102조원)의 0.16%에 불과했다. 심평원도 부정수급은 아니란 입장이다.
한편,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건강보험 재정 지출 증가를 이유로 정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다만 우리나라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7명 대비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 2010년 551만명이던 65세 이상 인구가 2020년 850만명으로 10년간 299만명(54.3%) 급증한 탓에 의사 수는 더욱 부족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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