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美본토서 전개된 최초부대
중공군 격퇴·지평리 전투 혁혁한 공적
미국 제2보병사단은 70년을 맞이한 한미동맹을 근간에서 떠받히는 주한미군에 가운데서도 핵심이다.
헤럴드경제가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를 찾은 지난달 22일, 미2사단 관계자는 “미 2사단은 한반도 내 침략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유사시 한미동맹을 위해 즉각 출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례구호부터가 ‘천하무적’(second to none)인 미2사단은 항시 출전 준비태세, 명예로운 삶, 품위와 존중, 목숨을 건 훈련, 안전 지휘체계 등을 모토로 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2사단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10월 프랑스 부르몽에서 창설됐다.
미2사단은 부대 창설 이후 미 본토보다 한국에 주둔한 역사가 더 길다.
캠프 험프리스 내 자리한 이영권 미2사단·미8군·한국작전전구 박물관 부관장은 “미2사단은 106년의 역사 가운데 60년 이상을 한국에서 주둔했다”며 “전체 미 사단 중에서 가장 최전방에 배치된 사단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한국과의 첫 인연은 6·25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워싱턴 주 포트루이스에 주둔하던 미2사단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여 만인 7월 23일 부산을 통해 한국에 도착했는데, 미 본토에서 한국에 전개된 최초의 부대였다. 다시 한 달여 뒤인 8월 24일 사단 전체 병력이 도착하면서 미24사단과 임무를 교대하게 된다.
미2사단의 한반도 전개로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 참전 전 부산을 점령함으로써 전쟁의 종지부를 찍으려던 북한의 구상은 파탄나고 말았다. 미2사단은 6·25전쟁 당시 해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중공군의 참전 이후 평양 인근 군우리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탓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의 적극적인 옹호와 변호로 미2사단은 새롭게 재편성됐다. 이후 중공군을 최초로 격퇴함으로써 6·25전쟁의 전환점을 마련한 지평리전투를 비롯해 폭찹고지, 발디고지,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적을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미2사단은 6·25전쟁 정전 1년 뒤인 1954년 8월 미 본토로 복귀했으나, 1965년 7월 북한군이 휴전선에 병력을 집결시키는 등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자 다시 한국으로 복귀해 한반도 전쟁 억지 임무를 수행해왔다.
2015년 6월에는 한미연합사단·미2사단 창설로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유사시 한반도에서 핵심 임무를 수행하도록 한미 육군의 다국적 군사조직으로 편성된 한미연합사단·미2사단은 두 나라의 여단급 병력이 단일 지휘체계를 공유하며 하나의 사단으로 편제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경우다.
한미연합사단·미2사단에서는 한미 장병이 매일 함께 근무하고 훈련하며 한국방어와 미국안보에 기여하고 있다. 신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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