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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스크걸’ 고현정 “장르물 연기 갈증…개인사 아닌 연기로 평가받고파”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아무렇게나 싹둑 자른 짧은 머리와 핏기 없는 얼굴, 죄수복을 입은 그녀는 삶의 희망이 없는 듯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다. 하지만 탈옥을 감행할 때는 결연함이, 자식을 구하려고 치열한 사투를 벌일 때는 처연함이 눈빛에 가득해진다. 성경책을 품에 안고 드러낸 형형한 눈빛과 웃음기 머금은 표정은 소름끼치기도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에서 세번째 김모미 역을 맡은 고현정은 30년 연기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마스크걸’은 주인공 김모미의 ‘3인 1역’ 중 한 명으로 고현정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하반기 기대작으로 손꼽히던 작품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지난 18일 공개된 후 2주가 지난 현재 글로벌 톱(TOP) 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는 등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진행자(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리기 위해 3인 1역의 캐스팅이 이뤄졌다. 젊은 회사원 김모미는 신인배우 이한별이, 성형수술 후의 쇼걸 김모미는 나나가, 중년 김모미는 고현정이 각각 맡았다.

김용훈 마스크걸 감독은 고현정에 대해 “극 중 아스팔트에 얼굴을 대고 있는 장면도 있고, 스턴트 배우가 해야 할 만한 장면도 있었는데, 과감히 몸을 던지더라”며 “얼굴을 흙이나 피로 뒤덮는 분장을 한 상태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고마웠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최근 활동이 뜸했던 고현정에게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저는 (장르물 연기가) 고팠다. 제의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며 “그간 사건들이 많아 ‘연기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배역 만으로 나를 생각해 연락해 준 게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그를 사로잡은 이유는 바로 한 사람의 캐릭터를 세 배우가 연기하는 작품의 콘셉트였다. 그는 “(3인 역할 중) 내가 마지막이라는 부분이 좋았다”며 “(캐릭터 상황에 집중하고자) 작품의 앞 부분을 모니터링 하지 않고, 시나리오에 나온 부분 즉 교도소에 10년 간 있는 사람이라는 점만 숙지하고 (촬영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고현정이 ‘3인 1역’ 캐릭터에 끌렸던 이유는 뭘까. 그는 “(주인공) 혼자 드라마를 짊어지고 가는 드라마, 잘 되면 본전이고 못되면 책임을 다 뒤집어쓰는 그런 드라마 보다는 구조적으로 협력할 수 밖에 없는 드라마에 매력을 느꼈다”며 “배우가 작품의 퍼즐로서 녹아드는 드라마에 고파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잘되기 보다는 이런 기획과 작품이 잘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고현정은 이어 “어떻게 하면 ‘마스크걸’에서만 볼 수 있는 모성을 표현해낼 수 있을 지를 생각했다”며 “30년 이상 연기를 하며 시청자들이 봐왔던 모습과 표정을 쓰지 않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고현정이라는 배우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오롯이 김모미라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모미가 딸인 미모를 만나는 장면에 대해선 “굳이 모성을 표현하면 신파가 되고, 구태의연해질 것 같았다”며 “현실적으로 딸을 구하고 지켜내는 게 급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소 건조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감독이 그래도 조금은 모성이 표현되면 좋겠다고 말하더라”며 “내가 딸을 보고 살짝 웃는 장면은 그렇게 해서 나왔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고현정은 이어 “모미를 관통하는 단어 하나를 든다면 바로 ‘염치’”라며 “모미에게 모성은 원초적인 것만 있어 가공되지 못한 채 툭 튀어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극중 “나 여기(감옥) 나가야겠어. 주님에게 용서를 빌었거든요”라는 대사가 좋았다”면서 “‘구원을 받으면 실제 어떤 생각이 들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표정으로 나타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30년차 베테랑 배우 고현정도 ‘마스크걸’에서 함께 한 이한별 같은 유망주가 등장하면 위협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는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오면 위협적”이라며 “제 취약점인 불안감을 건드리면서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뭘 할 수 있을까’는 질문까지는 가지 않는다”며 “내가 할 일은 세상에 있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발탁될까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현정은 젊은 배우들과 협업하면서 “요즘 후배들은 당당하고 자연스럽다”며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연기를 펼치는 후배들이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그는 극 중 가장 힘든 장면으로 탈옥신을 꼽았다. 그는 “가파른 벽을 올라가는데 와이어로만 몸을 의지하니 내 몸이 벽에서 떨어졌다”면서 “그래도 뛰고 달리는 신을 하고 싶었다. 상체는 앞으로 나오는데, 다리는 안따라왔다”며 웃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혼하고 지난 2005년 드라마 ‘봄날’을 통해 복귀했는데, (그때는) 컴백 못할 것 같았다”며 “ 다른 나라에 가서 살까 하고 생각하다가 돌아왔는데, 그때 잘 왔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친정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간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는데, 사실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다”며 “이제는 후회 없이 진짜 배우로, 연기로, 일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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