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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뜩한 인간성의 민낯 ‘콘크리트 유토피아’
대지진 속 홀로 살아남은 아파트 주민들
생존 위기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성
‘엄태구 친형’ 엄태화 감독 세 번째 장편
이병헌 신들린 듯 연기로 스토리 주도
스토리·연기·연출·비주얼 모두 ‘웰메이드’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빽빽했던 아파트 숲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대지진 속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 103동. 단 136세대의 입주민들만 집을 지켰다. 고급 아파트 ‘드림 팰리스’의 입주민들이 대놓고 무시했던 아파트다. 상황은 역전됐다. ‘드림 팰리스’ 입주민들이 몰려온다. 다른 사람들도 애원한다. 제발 들여보내 달라고. 남은 식량은 바닥을 보인다. 바깥은 온기 하나 없는 혹한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서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의 입주민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했다. 단편 영화로 내공을 쌓은 엄태화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엄 감독은 “원작에서는 처음에 아파트가 시스템이 갖춰지는 과정을 보여주진 않고, 외부의 시선으로 이상해진 공간을 바라보는 이야기라 인물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볼 수 없다”며 “이런 부분이 궁금해서 좀 더 입체적으로 각색했다”고 말했다.

시작은 ‘나름’ 민주적이다. 황궁 아파트 입주민들은 주민 대표로 ‘영탁’(이병헌 분)을 뽑고, 이들만의 규칙을 만든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외치며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이들을 발견되면 ‘바퀴벌레 무리’로 취급하고 가차없이 내쫓는다. 식료품은 아파트를 위해 수고한 만큼 차등 배분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러나 머지않아 균열이 드러난다. 떠밀리듯 주민 대표를 맡았던 영탁(이병헌 분)은 점점 권력의 맛에 취해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변한다. 가정과 공동체 규칙을 우선하던 공무원 민성(박서준 분)은 내적 갈등 속에도 영탁의 곁을 지키는 현실주의자다. 반면 그의 아내 명화(박보영 분)는 본인만큼 외부인들을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다.

그러나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어느 하나 처음부터 악했던 인간은 없었다. 생존 위기 앞에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 것 뿐. 그래서 선과 악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진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속 인물들은 현실 속 우리다. 위기 앞에서 발현되는 무한 이기주의와 섬뜩한 인간성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영화 속 여러 캐릭터에서 내 모습, 혹은 지인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영화의 배경만 재난 속 아파트일 뿐이다.

이병헌은 “캐릭터 하나 하나가 극단적이지 않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었고, 그게 적정선에서 조금씩 달랐다”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보여지는 인간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뻔한 생존기를 다루는 재난 영화보다 블랙 코미디나 스릴러에 가깝다. 인간의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면모를 계속 꼬집으면서도 위트와 스릴을 잊지 않는다.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영화가 끝나도 묵직한 여운이 남는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것은 이병헌의 열연이다. 뻗친 머리와 M자 탈모의 주민 대표로 변신한 이병헌은 신 들린 듯한 연기력으로 런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압도한다. 어리숙한 택시 기사에서 자신감 넘치는 주민 대표로, 이후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변신하며 입체적인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한다. 블랙 코미디에 그칠 수 있는 영화 장르를 스릴러와 서스펜스까지 아우르게 하는 것은 이병헌의 힘이다.

실감나는 비주얼과 음악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영화의 배경인 황궁 아파트는 실제 아파트 세트와 컴퓨터 그래픽(CG)을 합성해 완성했다. 경기도 연천의 공터에 3층 높이의 복도식 아파트 세트를 지어 촬영한 뒤 CG를 입혀 고층 아파트로 완성했다. 영화는 아파트 주변의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은 물론, 추위와 싸우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입김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실제 촬영이 지금 같은 폭염기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놀라울 정도다. 음악 역시 오프닝부터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섬뜩함을 선사하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엄태구가 카메오로 깜짝 출연하는 것도 깨알 재미다. 엄태구는 엄 감독의 친동생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은 본래 박해천의 한국 아파트 문화 연구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따온 가제였다. 그러나 “콘크리트는 아파트를,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않는 이상적 공간을 상징하는데 두 단어의 아이러니한 조합이 재미었었다”며 엄 감독이 저자의 동의를 얻어 제목으로 확정했다.

8월 9일 개봉. 130분. 15세 관람가.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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