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의부엌에서 공연하는 극의 실제 주인공 춘옥 할머니. 8살 해녀일을 시작했다. 4.3사태를 겪고 가난한 제주도를 살리겠다며, 국회의원을 꿈꿨다. 국회의원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삶은 극으로 재구성돼 해녀의 고달픈 삶을 대변하고 있다. [해녀의부엌 제공] |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나 국회의원 될거라. 국회의원 됭 나가 제주도 짐을 짊어지는 사람이 될거라. 부자 나라로 만들 거라.(나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국회의원이 돼 제주도 짐을 짊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 부자 나라로 만들 거야.)"
1945년 제주. 8살 어린 춘옥은 친구들에게 마음 속 간직한 꿈을 털어놨다.
춘옥은 해녀다. 바닷물과 모래에 쓸린 고사리손은 사포처럼 거칠어졌고, 태양에 그을린 피부는 까맣게 탔다. 그 작은 몸을 내몰아치는 바닷속에 내던지고는 종개호미로 미역이나 톳을 캐고, 가끔은 빗창으로 전복을 따오기도 했다.
제주에 사는 여자들이 으레 그랬듯, 춘옥에게 교육은 욕심이었다. 여자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면 "쓸데 없는 짓 한다"고 구박받는 시대였다. 그나마 국민학교를 졸업한 게 자랑이었다. 춘옥은 학교에 간 오빠들이 너무 부러웠다. 말끔한 교복을 입고 집에 와서 책을 펴고 숙제를 하는 오빠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다.
춘옥 할머니가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 인사를 하고 있다. [해녀의부엌 제공] |
춘옥이 12살이 되던 해 철모와 소총, 수류탄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제주에 들이닥쳤다. 군인들은 집을 불태우고, 도민들에게 총을 겨눴다. 친오빠도 끌려갔다. 건넛집 삼촌이 끌려가는 것을 막아보려 울며불며 매달린 그의 어머니는 군인이 휘두른 개머리판에 맞아 힘없이 쓰러졌다. 얼마 전 아이를 임신했다던 젊은 아주머니도 죽창에 찔려 죽었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들었다.
어린 춘옥은 그저 제주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토록 사람들이 모질게 괴롭힌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돼 제주를 잘 살게 하면, 이 모든 고통이 끝날 것이라 여겼다. 춘옥은 나중에서야 제주 4.3사건으로 불리는 역사의 참상을 목격했음을 알게 됐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 이 마을엔 힘이 없어서 제주가 가난해서, 여기저기 사람들이 끌려가 죽는거라고. 그래서 나는 국회의원이 돼서 제주를 잘 살게 할거야."
김하원 해녀의부엌 대표가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해녀의부엌 제공] |
"해녀 할머니들이 겪고 있는 여전히 힘든 삶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연극을 만들게 됐어요."
나이가 지긋한 춘옥은 더이상 국회의원의 꿈을 꿀 수 없지만, 그때의 이야기는 연극으로 재탄생 해 되풀이 돼선 안될 뼈아픈 역사를 우리들에게 되새기고 있다.
춘옥 할머니의 삶을 연극으로 재구성한 이는 김하원(32) '해녀의부엌' 대표다. 제주가 고향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제주 4.3사건의 이야기를 들어왔고, 해녀들이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을 지켜봐왔다.
"해녀들이 어렵게 잡은 뿔소라 등 해산물들이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또 이들이 잡은 수산물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김하원 해녀의부엌 대표 [해녀의부엌 제공] |
그는 배우를 꿈꾸던 배우지망생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학교에서 '연극 치료' 등을 배우면서 연극을 해녀들을 위해 쓰면 좋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김 대표는 2019년 제주도에 연극이 있는 식당 '해녀의부엌'을 개업하고 본격적으로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섰다.
김 대표는 연극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재미가 있어 많은 이에게 쉽게 해녀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쉽고, 그러면서 문제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연극과 식당이 조합된 우리만의 브랜드를 통해 해녀가 직면한 문제를 알리는 데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연극은 성공적이었다. 2개 코스로 나뉘어 각각 45분, 25분씩 공연되는 이야기는 현재까지 평균 예약률은 96%를 넘어 100%에 가까운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누적 방문객만 5만명을 넘었다.
해녀의부엌에서 제공하는 상웨빵과 제주도 고사리, 제주도 당근주스 [해녀의부엌 제공] |
"우리에게 바다가 뭐냐고? 뭐긴 부엌이지." (해녀이야기 '춘옥'의 대사 중)
해녀의부엌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연극에만 그치지 않는다. 해녀의부엌에서 제공되는 음식도 남다른 묘미가 있다.
극 중에서 춘옥이 바다를 해녀의 부엌으로 표현한 것처럼, 해녀의부엌에서 나오는 모든 음식은 직접 해녀가 바다에서 잡은 수산물로 만들어진다.
메뉴는 바다에 나오는 식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90살이 넘은 최고령 해녀의 비밀 레시피로 만든 뿔소라 젓갈이라던지, 조선시대 제주도에 살았던 이방인 하멜이 먹었더던 제주 전통빵 '상웨빵'도 눈에 띈다. 또 육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군소로 만든 '군소무침'도 기회가 된다면 맛볼 수 있다.
해녀가 직접 잡은 뿔소라와 수산물을 재료로 한 해녀의부엌 음식 [해녀의부엌 제공] |
김 대표는 "처음 이 해녀의부엌을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해녀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며 "모든 음식을 해녀들이 먹는 음식, 그리고 해녀들이 구해온 식재료로 만들어보는 것이 주요 컨셉"이라고 소개했다.
제주도 해녀의 모습 [해녀의부엌] |
"제주도의 해산물 가격은 일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어요. 다른 활로를 개척하려해도 이미 고착화된 어르신들의 마음을 돌리기 어려워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어요."
김 대표가 가장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제주도 해산물의 유통이다. 제주도에서 채취된 해산물 상당수가 일본에 수출되는 만큼, 가격결정권도 일본에 있어 이런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톳을 예로 들면, 일본에는 톳 시장만 2000억원 규모로 형성돼 있어요. 그에 반해 한국은 5년 전만 하더라도 톳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죠.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가격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해녀의부엌을 통해 이런 문제를 꾸준히 제기했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우선은 기존 제주 어촌계를 설득하는 것부터 막혀 있는 상황이다.
"어느날 유통 MD가 찾아와 뿔소라를 기존 가격보다 30% 더 높은 가격으로 육지에서 유통하겠다는 제안을 했어요. 희소식을 어촌계에 전했지만 거래는 무산됐어요. 새로운 거래를 믿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주도에 김 대표와 같은 꿈을 가진 청년들이 많이 유입되는 게 필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과 달리 제주도에는 점점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제주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은 청년들이 많이 제주도에 오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거든요. 제주도에는 더 많은 젊은 청년들이 필요해요."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