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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제8의 멤버 피독 “프로듀서는 감 잃으면 끝나는 직업”
수많은 히트곡 냈지만 늘 아쉬움 남아
요즘 MZ세대 3분이내의 숏폼음악이 대세
트렌드보다 ‘조금의 다름’ 느끼는 음악하고파
피독은 “가수나 프로듀서는 감을 잃으면 끝나는 직업”이라며 “항상 마지막이 온다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임세준 기자

‘#대한민국 음원 저작권 1위’, ‘#방탄소년단의 시작’, ‘#BTS 제8의 멤버’....

프로듀서 피독(강효원·39)을 따라다니는 수사는 화려하다. 국내 최대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에선 그를 ‘갓독’으로 불린다.

수많은 아미를 비롯한 리스너들은 “피독 선생님, 절 받으세요”, “태어나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저마다의 플레이리스트를 은근슬쩍 꺼내놓고 간다. 지지기반 하나 없던 ‘흙수저 아이돌’ 방탄소년단(BTS)이 ‘21세기 팝 아이콘’이 되기까지, 이들의 곁엔 언제나 피독이 있었다.

명실상부 최정상 음악 프로듀서이나, 장비의 숫자와 무관하게 그의 작업실은 소탈하다. 오로지 음악만을 위한 공간이다. 많은 날들 동안 받은 트로피 중 두 개가 스피커 위에 우두커니 서있을 뿐 불필요한 장식도, 이렇다 할 인테리어도 없다. 17대의 키보드가 들어찬 이곳에서 전 세계를 뒤흔든 곡들이 태어났다. 계절마다 누군가를 어루만진 곡들도 여기에서 나왔다.

서울 용산 하이브 사옥 내 작업실에서 피독을 만났다.

“요즘엔 아티스트들이 집으로 와서 하는 작업도 많아요. 집에선 조금 더 편안하고 코지한 느낌이라면 여긴 각 잡고 하는 느낌이 있죠 (웃음).”

방탄소년단 프로듀서 피독은 성악을 공부하다 대중음악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2007년 ‘하이브 1호 가수’인 이현이 소속된 에이트 1집 참여가 그의 프로 데뷔다. 임세준 기자

▶성악 배우다 대중음악의 길로... “하이브 최장수 생존자”=스눕 독과 닥터 드레를 사랑하던 그의 시간 안엔 이질적인 과거가 공존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피독의 음악사는 클래식 10년, 대중음악 17년으로 나눌 수 있다. 그는 변성기가 오기도 전 성악을 시작, 부산에서 예중·예고를 나왔다. 초등학교 땐 경남 일대 동요대회를 휩쓸었다.

“어릴적 제법 상을 받으니 성악에 재능이 있는 줄 알고 속아서 성악을 전공하게 됐어요(허허). 그런데 전혀 타고 나지 않았다는 걸 고3 때 깨달았어요. 할 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했는데, 태생적으로 안되는 걸 알았죠(웃음). 순수예술은 천부적 재능이 9할이더라고요.”

오랜 시간 다져온 발성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재능의 한계’를 마주한 그의 선택지는 교사. 음악교육과로 대학에 진학했다. “중학교 음악선생님이 되려고 했어요. 그런 이미지가 좀 있죠? (웃음)” 작곡은 ‘취미생활’이었다. 사실 “대중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힙합이나 흑인음악을 만들다 푹 빠졌고, “이런 걸 맨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하이브 전신)와의 인연은 2000년대 중반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운영하던 온라인 작곡 카페에 곡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2007년 ‘하이브 1호 가수’인 이현이 소속된 에이트 1집 참여가 그의 프로 데뷔다.

“그 해 여름쯤이었나, 첫 미팅을 했어요. 에이트 음반에 제 곡을 넣을 거라 하시면서, 음악을 하려면 서울에서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2주 만에 상경했는데, 그걸 높이 평가해 주셨어요. 보통은 지망생에게 조언을 해도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피독에게도 방시혁 의장과 함께 하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음악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작업실에서 클래식은 물론 흑인 음악까지 아우르는 무수히 많은 CD를 마주하며 든 생각이었다. 정말로 수많은 곡을 작업했다. 방 의장과 함께 ‘최악의 연인’으로 꼽히며 회자되는 ‘향수 뿌리지마’(틴탑)의 노랫말을 썼고, 임정희 에이트 등의 알앤비(R&B), 백지영 조권 2AM 틴탑 등 발라드와 댄스 장르를 아울렀다.

그는 “예전엔 한국에서 작곡가라고 하면 트로트부터 댄스까지 모든 걸 할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였다”며 “난 조금 할 줄 아는 친구였는데,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다”고 돌아봤다.

그 시절 방시혁은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과 같은 발라드 작업에 한창이었다. 피독은 스스로 “발라드 감성이 없는 사람”이라 “당시엔 (발라드 음악이) 시험 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매번 처음 만드는 음악을 과제처럼 받아들고, 하나의 곡을 완성하기 위해 공부를 거듭하며 작업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경험이 “장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는 힘”이었다. 오래도록 클래식을 공부한 것도 음악 세계를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됐다. 그는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라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들어왔기에 악기의 사용과 선율의 움직임, 대위법적인 요소를 대중음악에도 적용하곤 한다”고 말했다.

하이브와의 동행은 어느덧 17년. 그는 “이 회사에서 제일 오래 살아남은 인간”이라며 웃었다.

방탄소년단

▶연습생부터 현재까지...BTS의 음악적 동반자=방탄소년단의 데뷔곡 ‘노 모어 드림(No More Dream)’부터 ‘옛 투 컴(Yet To Come)’, 올해 발매된 지민의 솔로곡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까지.... 피독의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는 단연 방탄소년단이다. 방탄소년단의 데뷔 프로젝트엔 피독과 멤버들의 ‘피 , 땀, 눈물’이 고스란히 담겼다.

피독은 “지난 10년은 방탄소년단 이외의 음악은 거의 안 했다고 보는게 맞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출발은 ‘힙합 아이돌’이었다. 피독은 스스로의 음악 기반을 힙합에 둔 만큼 ‘방탄소년단 프로젝트’는 빅히트 입사 수년 만에 힙합 음악에 대한 꿈을 꺼내는 시간이었다.

“이 친구들이 길게는 3년 정도 연습생 생활을 했어요. 너무 신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애들 데리고 곡을 만들며 데뷔를 준비한 기간이었어요.”

목표가 세워졌다.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힙합음악”을 만들어 “춤, 랩, 노래도 잘하는 그룹”으로의 데뷔였다. 2013년, 10대의 꿈과 고민을 담은 이야기로 세상을 두드렸다. 기존 K-팝 그룹과는 다른 정체성이었다. 이듬해 발매한 첫 정규앨범 ‘다크 앤 와일드(Dark & Wild)’는 지금은 익히 알려진 ‘데인저(Dager)’가 수록된 앨범이나, 기대 이상의 성적은 아니었다.

당시를 돌아보며 피독은 “목표는 확실했는데, 왜 우린 안 되는 걸까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보는 방탄소년단의 강점은 분명했다. 일곱 명의 멤버 모두 ‘음악에 진심’이라는 점이다.

“이 친구들은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음악을 만드는 것도 좋아해요. 활동이 바쁠 때도 새벽에 나와 작업을 하고요. 그 모습이 제겐 자극이 되고, 대중에겐 ‘방탄소년단은 진짜’라고 느끼게 하지 않나 싶어요. 특히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외팬들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고요.”

데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피독의 1년 스케줄은 방탄소년단의 활동에 맞춰져 있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며 곡 작업을 해왔다. 지난한 과정이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날이 ‘대다수’라고 한다.

아미들에겐 ‘천재 프로듀서’로 불리지만, 스스로는 “천재과가 아니기에 엉덩이를 붙이고 되든 안되는 이것 저것 해본다”고 했다.

곡 작업은 ‘대화’에서 시작한다. ‘음악의 주체’가 되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비트와 음표로 버무린다. “이 친구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 들어요. 재밌는 것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성장 과정을 보며 저도 함께 성장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거예요. 이 친구들이 힘들 때, 저 역시 비슷한 힘듦을 느끼더라고요.” 방탄소년단의 이야기가 피독의 영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 앨범 도전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과제의 달성’을 목표 삼아 달리다 보니, 변화의 계기를 체감할 때도 거의 없었다. 굳이 꼽자면 2016년 ‘화양연화 : 영 포에버(Young Forever)’ 앨범에 수록된 ‘불타오르네’다.

그는 “무대와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결합했을 때 아이돌로서 이렇게 멋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계기”이자 “(내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이돌 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곡”이라고 했다.

무수히 많은 히트곡을 냈지만, 모든 곡엔 “아쉬움만 남는다”고 한다. 이전의 곡들도 거의 듣지 않는다.

그는 “대중음악을 만드는 일은 늘 새로운 것을 해야 하기에, 다음엔 또 어떤 음악을 만들 지에 포커스를 둔다”고 했다.

물론 가끔씩 찾아 듣는 곡은 있다. 2016년 나온 방탄소년단의 ‘세이브 미(Save Me)’다. “우중충한 날씨에 일상복을 입고 찍은 원테이크 뮤직비디오와 안무”가 곡을 잘 살려서다. “그 때의 무드에서 방탄소년단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보이더라고요.”

피독은 음악의 주소비층인 “젊은 세대는 음악 한 곡을 쭉 들어주지 않는다”며 “이로 인해 노래 길이는 ‘3분 이내’로 짧아졌고, 인트로부터 듣고 싶게 만드는 음악을 쓰고자 한다”고 했다. 임세준 기자

▶피독의 음악은 늘 변화중...“좋은 음악은 두 번 듣고 싶은 음악”=대중음악계의 ‘시계’는 일상과 다르다. 트렌드의 최전선인 이 곳에서의 10년은 강산이 서너 번은 뒤바뀔 시간이다. 이 긴 시간은 음악 PD 피독의 변화이자, 한국 대중음악신의 변화이기도 하다. 그 사이 방탄소년단은 ‘글로벌 슈퍼스타’로 성장했고, 빅히트는 하이브로 굴지의 음악 회사가 됐다. 지금이야 글로벌 음악회사이나, 10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맨몸으로 자본 중심의 음악 시장에 뛰어든 때였다. “좁은 방에서 으쌰으쌰하며” 부대꼈다. 회사의 확장으로 “상상할 수 없던 프로듀서와의 협업”이 성사되고, 이젠 세계의 중심에서 음악 활동을 하게 됐다.

그는 10여년 전에도, 지금도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기민하게 포착한다. 시대가 ‘뽕끼’를 요구할 땐 ‘파파라치’(간미연)와 같은 ‘뽕 댄스’를 썼고, 록을 원할 땐 드럼과 기타를 연구해 록 사운드를 만들었다.

“음악과 시대의 흐름도 바뀌지만, 워낙 방시혁 의장이 트렌드에 민감해요. 살아남으려면 그 취향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변화에 맞춰가다 보니 자연히 스펙트럼이 넓어지더라고요.”

시대의 변화는 음악의 변화를 이끈다.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나타난 변화다. 이른바 ‘스킵’(건너뛰기)과 ‘숏폼’의 시대로 접어들며, 음악의 길이와 구성이 달라졌다.

피독은 음악의 주소비층인 “젊은 세대는 음악 한 곡을 쭉 들어주지 않는다”며 “이로 인해 노래 길이는 ‘3분 이내’로 짧아졌고, 인트로부터 듣고 싶게 만드는 음악을 쓰고자 한다”고 했다.

“요즘 시대의 좋은 음악은 두 번 듣고 싶은 음악인 것 같아요.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는다면,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음악이죠. 그렇게 하면 다시 한 번 꺼내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한 번 듣고 흘리는 음악이 많다 보니, 두 번 듣는다는 것은 내 귀를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거든요.”

K-팝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면서 음악 트렌드도 달라졌다. “가요보다는 글로벌 스탠다드 팝의 형태”를 지향하고, 사운드나 포인트에서도 팝적인 요소가 많아지고 있다. 시장이 달라지니, 해외 창작자와의 공동 작업도 많다. ‘미래의 피독’을 꿈꾸는 국내 음악가들이 설 자리를 우려하는 이유다. 피독은 “대중음악은 계속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만큼, 이 역시 당연한 변화”라고 했다. 해외 창작자와의 협업은 그것 자체로 긍정적 시너지가 된다. “혼자 할 때 찾지 못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보완”한다. 한국인 창작자의 강점도 분명하다. “해외 창작자에겐 없는 한국인만의 정서와 한스러움, 변화무쌍한 음악은 우리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트렌드는 돌고 돈다. 지금 세계 음악계에선, “레트로가 유행하고, 창작자들이 1980~90년대 빈티지 악기들을 찾아 쓴다”. 그는 “최근까진 90년대 음악이 핫했다면, 이젠 2000년대의 유로 댄스가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AI와 동행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때”라고 조언했다.

피독의 오늘을 일군 것은 결국 ‘음악’이다. 방탄소년단의 성취를 이끌면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그는, 방탄소년단의 오늘과 무척이나 닮았다.

그는 “오래 좋아하던 프로듀서나 지금 현재 잘 나가는 친구들과 협업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난 한참 멀었다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늘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스스로를 낮춘다. “너무 잘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 반성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가수나 프로듀서는 감을 잃으면 끝나는 직업이에요. 항상 마지막이 온다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어요. 그 마음이 해이해질 때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제 음악은 늘 변화 중이에요. 지금 현재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막연히 트렌드를 좇기 보다는 자기화를 통해 조금의 다름이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음악, 그게 저의 지향점이에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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