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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성문 쓰라하자 “학대”...고소당하는 교사들
증거확보 어렵고 비용부담에 포기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 1월 아동학대로 신고 당했다. 지난해 담임 교사를 맡으며 1년 내내 수업을 방해하고 A씨에게 반말을 한 학생 부모의 신고였다. A씨가 자녀에게 반성문을 쓰도록 지도하고 상담 받을 것을 권유했다는 이유였다. A씨의 아동학대 혐의는 5개월 만에 ‘무혐의’로 종결됐다.

#.또 다른 교사 B씨는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지도하다 아동학대로 신고 당했다. 학생이 휴대 전화를 숨긴 바지주머니를 지시봉으로 툭 친 것이 발단이 됐다. 학생과 학부모는 B씨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B씨의 사례 또한 ‘무혐의’로 종결됐다. B씨는 이후 무고죄로 학부모를 고소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합의를 하고 소송을 취하했다.

교육 현장의 ‘교권 침해’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기존에는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거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폭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교사의 생활·학업 지시를 ‘아동학대’로 신고 또는 고소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무혐의로 종결되는 데 수개월이 걸리고 실제 재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보니 적극 대응하기보다 합의금을 주고 포기하는 경우도 잦다.

14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에 따르면 지난 104차 교권옹호기금운영위원회 심의에 오른 87건 중 44건(51%)이 교원의 지도나 학교폭력 사건 대응 등을 문제 삼은 아동학대 고소·소송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권옹호기금은 교권 침해 사건으로 소송이나 행정 절차를 진행하는 교원에게 변호사 동행료·선임료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교권옹호기금운영위는 1년에 2차례 진행된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교권옹호기금운영위 회차별 아동학대 관련 심의 건수는 증가세를 보이다 이번 회차에서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2020년 하반기 99차 위원회 87건 중 18건(20.7%) ▷2021년 하반기 101차 위원회 83건 중 7건(8.4%) ▷2022년 하반기 103차 57건 중 15건(26.3%) 등이다. 한국교총은 104차 운영위 심의 안건 87건 중 66건에 대해 1억 6055만원의 소송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교권옹호위의 단일 회차 회의에서 결정된 역대 최대액이다.

교사들이 아동학대로 신고·고소를 당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혐의를 벗기 쉽지 않다.

홍승민 법무법인 담솔 변호사는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증언이 필요하지만 학생, 학부모 모두 형사 사건 개입을 꺼려해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며 “소송비 부담이 커 변호사 선임·자문을 통해 대응하기보다 합의금을 주고 마무리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임지석 법무법인 해율 변호사는 “일반적인 학생 지도 중 아동학대로 신고 받아 법률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학교 내에 학생 지도를 위한 실효성 있는 기구가 우선”이라면서도 “교원의 법적 대응을 위해 학교나 교육청이 외부 법률 상담을 연결하는 제도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선 교사들의 불만이 가중되면서 법적 장치가 제안됐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표류 중이다. 지난해 9월 서울시교육청은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활동보호 조례’를 입법 예고했으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가 조례안을 상정하지 않아 1년째 계류 중이다. 이 조례안은 민원인의 행위가 형사 처벌 규정에 해당한다면 학교장 요청을 전제로 교육감이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도록 했다. 보호자나 민원인의 교육 활동 침해로 교원이 법적 대응할 경우 소송비를 지원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 5월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초·중등교육법에 정당한 학생생활 지도의 경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아동학대범죄로 보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아동학대처벌법에는 교육 현장 특수성을 고려해 교원에 대한 신고가 접수될 경우 수사기관이 소속 교육청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지영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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