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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은 이제 ‘브랜드’다 [헬로 한글]
K-푸드 강조·‘메이드 인 코리아’ 선호 급증
한글 제품이름 ‘고유명사’로 인식하기도
“모음·자음 조형미 훌륭한 디자인 도구”

“덤플링(dumpling)이 아니라 만두(mandu), 칠리 페이스트(chili paste) 대신 고추장 (gochujang)”

기업들의 해외 마케팅 전략이 바뀌고 있다. 브랜드나 제품 이름을 영어식 표현에서 한글이나 한국식 발음대로 적는 경우가 많아진 것. 한국의 국가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한글을 제품에 노출하는 것이 글로벌 프리미엄 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4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전체 식품 매출의 46%가 해외 시장에서 나오는 CJ제일제당은 최근 해외에서 판매되는 자사의 비비고 만두 제품의 이름을 교자에서 만두로 변경했다. 교자는 만두를 뜻하는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은 단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글로벌 무대에서) 제품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것은 우리 제품이 정통 K-푸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라며 “해외 시장,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한글로 된 제품명이 제품의 프리미엄 느낌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 ‘메이드 인 코리아’를 (글로벌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어, 한글로 된 이름이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라면업계 1위 농심은 지난 1971년부터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와 같은 주력 제품을 한글 이름 그대로 사용해 수출해왔다.

농심 관계자는 “회사의 철학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기에, 농심의 해외 수출 제품이 한국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동일하게 인식되기를 원했다”며 “(결과적으로) 제품의 전반적인 신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물론 해외 사업 초기 제품 이름을 기억하기 어렵다, 발음하기 어렵다 등등의 불평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K-푸드, K-팝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글로벌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이제는 우리 제품의 이름을 고유명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농심 관계자 역시 “농심만의 차별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쌓는데, 한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주류업체 하이트진로는 ‘진로’라는 이름을 모든 해외 판매하는 제품에 사용하는 마케팅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참이슬과 일품진로와 같은 회사의 브랜드 이름은 해외 소비자들이 외우기 쉽지 않다”면서도 “한글 이름이 한국의 술 ‘소주’라는 제품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기에 글로벌 무대에서 한글 이름 사용을 고수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술 대표 주자로서의 진로 제품이 인기를 얻으며, 일부 동남아시아 지역 등에서는 모조품까지 등장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식품회사 뿐 아니라 보여지는 이미지가 중요한 패션 회사들 역시 한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글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는 것. 이는 높아진 한국의 위상 뿐만 아니라, 한글 자체의 아름다움과도 연관이 있다.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입점 브랜드들과 한글을 주제로 한 한정 콜라보 제품을 출시했다. 브랜드 로고와 무늬를 한글로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무신사 관계자는 “최근 패션 업계에서 브랜드 영문 로고나 특성 텍스트를 디자인으로 활용하는 상품이 많은데, 한글이 표현할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적인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다”며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자는 취지에 공감한 입점 브랜드와 여러 아티스트가 협력한 만큼 소장 가치가 있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도 즐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한글을 컬렉션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 1월 한글을 주제로 한 제품을 단독 출시했다. 공개된 46개 제품 중에는 한글로 된 구찌 이름이 인쇄된 티셔츠와 맨투맨이 포함됐다. 한글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 중 가장 비싼 제품은 320만 원짜리 집업 후드티이다.

김지형 경희사이버대학 한국어문화학과 교수는 “한글은 초성과 모음, 모음 아래에 배치된 자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조합을 통해 조형미를 갖춘 훌륭한 디자인 도구로 기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과학과 교수는 “해외 시장에서 한글 브랜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반해, 국내서는 오랫동안 푸대접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그 이유로 “영어 이름이 만들어내는 후광 효과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한국 소비자들은 오랫동안 영어로 된 로고가 있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제품들에 노출돼 있어 제품 이름이 한글로 표기될 때 브랜드 파워의 후광 효과를 느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기업들은 해외 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 대상 한글 브랜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래어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처음에는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대기업을 중심으로 상표와 브랜드 명에 한글 이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의 노력을 기울 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헤럴드=이윤서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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