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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그림 앞에서 김연아가 떠올랐다 [어떤울림]
페로탕 도산파크, 시야오 왕 첫 한국전
전세계 미술계 주목하는 젊은 추상화가
여백을 활용한 공간 장악·구성력 탁월
절제된 붓터치와 자유로운 선·감각적 색감 매력
Xiyao Wang, Rond de jambe no. 1, 2023, Oil stick, charcoal on canvas, 250 x 450 cm, Photo: Studio XW.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페로탕 제공]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하얀 날 것의 캔버스를 채운건 목탄 드로잉과 오일스틱의 흔적이다. 여백이 거의 대부분인데도 비어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리드미컬한 색의 유영이 공간을 점령했다.

그의 그림 앞에서 갑자기 김연아가 떠올랐다. 2010년 벤쿠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전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그 끔찍한 중력의 무게를 가볍게 떨치고 사뿐히 날아오른 퀸연아. 하얀 빙상장을 우아한 스파이럴,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 트리플 플립 점프로 채워나갔던 피겨 여제의 몸짓이 연상됐다.

‘독립 소녀, 자신의 길을 가다’라고 쓰인 귀걸이를 하고 나타난 시야오 왕 작가 [이한빛 기자]
전세계 미술계가 주목…무섭게 떠오르는 신예 작가

추상회화와 김연아의 급작스런 상관관계를 고민하던 찰나, 작가가 인사를 건넸다. 시야오 왕(Xiyao Wang·31). 최근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급격하게 떠오르는 신예작가다. 중국 충칭 출신으로, 어릴적 부터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21세에 베를린으로 건너가 그곳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간 장악력, 절제된 붓터치와 자유로운 선, 감각적인 색감이 매력적이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추상회화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를 눈 밝은 갤러리스트들이 먼저 픽업했다. 현재 페로탕, 마시모데카를로, 쾨니히에서 개인전을 차례로 가졌고, 한국에선 페로탕 도산파크에서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Xiyao Wang, Allongé no. 1, 2023, Oil stick, charcoal on canvas, 190 x 300 cm, Photo: Studio XW.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빈 캔버스 앞에서 ‘알롱제’를 하듯 기다린다

‘타오바오’에서 샀다는 명패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나타난 작가는 “이번 작업의 주제는 ‘알롱제’다. 발레에서 동작의 마지막에 조금 더 자신의 에너지를 확장하며 다음을 기다리는 마무리 자세로, 나의 몸을 통해 바깥으로 이어지는 에너지가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데 내 작업들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여백은 바탕이 아니라 비어있기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발레리나들이 동작을 연결시키기 전 알롱제에 끝까지 집중하는 것 처럼, 그의 여백도 마찬가지다. 비어있으나 비어있지 않다.

특정한 도상도, 이미지도 연상되지 않는 완벽한 추상을 그는 어떻게 그려낼까. 치밀하게 계산하는 것일까 아니면 즉흥적으로 완성하는 것일까. 작가는 빈 캔버스 앞에서 마치 ‘알롱제’를 하듯 기다린다고 했다.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마무리 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넣을 색감도 고른 다음 목탄으로 구조를 잡고 그 위에 나무 위에 꽃이 피듯 혹은 바위 위에 풀이 자라듯 오일스틱으로 색감을 넣는다. “치밀한 계산도 하지만 즉흥적으로 완성되는 부분도 있다”

Xiyao Wang, Relevé no. 2, 2023, Oil stick, charcoal on canvas, 135 x 125cm, Photo: Studio XW.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페로탕 제공]
“나의 주제는 ‘경계 없음’과 ‘끝없는 가벼움’”

그의 작업에서 사이 톰블리(1928-2011)를 읽어내는 사람들도 꽤 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다. 그의 여백과 내 여백은 출발이 다르나, 외견상 비슷한 부분이 있다. 빈 공간은 단순히 텅빈 표면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다” 여백을 텅 빈 공간으로 채워야할 대상이 아닌 공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주인공으로 보는 두 작가의 작업은 그래서 비슷한 지점을 공유한다.

이번 전시 주제는 알롱제이나, 작가가 지속해서 고민하는 테마는 ‘경계 없음’과 ‘끝없는 가벼움’이다. 어릴적부터 ‘반항아’였다는 작가는 숨막히는 제도 교육이 싫었다고 했다. “유치원때도 선생님 몰래 도망쳐서 집으로 가기도 했고, 초등학교 때도 그랬다”며 웃음을 터트린 작가는 “그래도 숙제도 열심히 하고 성적은 나름 상위권 이었다”고 말했다. 입시를 목표로 하는 틀에 박힌 공교육은 작가에게 늘 ‘자유’를 갈망케 했다. “아버지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화가였던 아버지는 시서화에 두루 능했는데, 당나라 시인인 이백을 무척 흠모하셨다. 이백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되고싶어 하셨다. 예술가란 다들 그런 기질이 있지 않나”(하하)

Xiyao Wang, Saute de Basque, no. 5, 2023 Oil stick, charcoal on canvas, 135 x 125cm, Photo: Studio XW.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페로탕 제공]
추상회화 앞에서 김연아가 떠오른 이유

‘경계없이 자유로운’(boundary-less), 중력에서 벗어난 ‘가벼움’(weight-less)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김연아가 연상된 이유를 깨달았다. 그의 스케이트가 감동적이었던 이유다. 수많은 기대와 첨언의 무게를 뚫고 그는 경계없이 자유롭고 우아하게 빙상을 장악했다. 이것이 물 흐르듯 ‘큰 힘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effort-less) 보이면, 그 작품을 우리는 ‘마스터피스’라고 부른다. 31살 작가는 그 길을 알고 있는지, 이렇게 쓰여진 문구가 있는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독립 소녀 자신의 길을 가다, 뜨겁게 뛰는 야수의 심장으로”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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