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증권가에서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에 따른 종목별 실적 상승과 주가 반등이 시작될 것이라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던 2분기가 벌써 한 달이나 지났지만 대표적인 중국 리오프닝 관련주들의 주가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 리오프닝이 예상보다 더디다는 지적도 있지만,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선반영’된다는 증권가의 ‘불문율’마저 중국 리오프닝 관련주만큼은 적용되지 않는 모양새다.
미중 경제 패권 경쟁과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 등 지정학적 문제에 따른 한중 갈등 이슈는 중국 리오프닝주의 부진에 기름을 끼얹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보복소비’ 본격화에 글로벌 명품주의 주가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비슷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됐던 K-뷰티·패션·카지노 관련주의 성과가 더 초라해 보이는 상황이다.
도무지 살아나지 못하는 K-뷰티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대표적인 중국 리오프닝주 중 최근 3개월간 주가 부진의 골이 가장 깊은 분야는 화장품이다.
이 기간 중국발(發) 쇼크를 받은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G 주가는 각각 22.66%, 21.88% 급락했다. 지난 1분기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6% 감소한 9137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무려 59.3%나 줄어든 644억원에 그쳤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내수는 물론 중국인 고객이 다수인 면세 매출 결과가 시장 추정치보다 부진했다”고 지적했다. 올해 1분기 중국 내 화장품 시장이 전년 대비 5.9%나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시장 매출은 40% 이상 하락한 것이 뼈아픈 결과를 불렀다.
LG생활건강 주가도 지난 3개월간 15.3%나 빠졌다. 오지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시장에 대한 매출이 전년 대비 17% 감소한 7015억원으로 시장 성장세를 밑돌았다”고 꼬집었다.
한국화장품제조(-25.67%), 한국콜마(-9.82%), 코스맥스(-3.59%) 등의 주가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패션·카지노 관련株 모두 지지부진
중국 시장에서 그동안 고성장세를 이어왔던 패션 기업의 주가도 올 들어 지지부진했다.
MLB브랜드로 작년 중국 시장에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F&F의 주가도 3.08% 뒷걸음질 쳤다. 최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F&F의 1분기 매출(4947억원)·영업이익(1488억원)이 각각 전년 대비 13.8%, 10.6% 증가했다”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컨센서스를 3%·6% 상회한 F&F의 실적 호재는 중국 시장 덕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선 대만 문제를 둘러싼 한중 양국 간의 ‘험한 말’이 오가는 등 경색된 분위기가 ‘제2 한한령(限韓令)’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주가 상승 폭이 제한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밖에도 과거 NBA 브랜드를 운영했지만, 불매운동 등으로 사업 철수에 나서는 등 대대적인 중국 사업 체질 개선에 나선 한세엠케이 주가도 15.27% 가량 빠졌다.
이 밖에 롯데관광개발(-18.46%), 강원랜드(-18.13%), 파라다이스(-11.41%), GKL(-4.65%) 등 카지노 관련주와 신세계(-8.97%) 등 면세점 관련 종목도 부진했다. 다만, 면세점주 중 호텔신라(+4.86%)는 최근 따낸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권 덕분에 상승세를 기록했다.
기대 못 미치는 中 리오프닝 탓하기엔 佛 명품株 주가 ↑
일각에선 중국 리오프닝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한 탓에 관련주가 탄력을 받지 못한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중국의 ‘소비자신뢰지수’는 작년 11월 85.5 이후 지난 2월(94.7)까지 4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였지만, ‘긍정적 평가’ 상태인 100을 넘지 못했다. 여기에 경기 동향을 가늠할 수 있는 ‘차이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1월(50.1)·2월(52.6) 기준치인 50일 넘으며 상승세를 보였지만, 3월 51.9로 감소한 데 이어 4월 49.2로 기준치 아래로 뒷걸음질 치기도 했다.
다만, 중국 시장에서 맥을 못 추는 국내 기업들과 달리 프랑스 명품 기업들은 ‘보복소비’에 따른 역대급 실적을 1분기에 기록하며 주가 역시 상승하는 등 중국 리오프닝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점은 대조적이다.
세계 3대 프랑스 명품 기업 중에선 에르메스의 주가가 12.14% 오르며 오름폭이 가장 컸고,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5.73%), 크리스찬 디올(2.08%)이 뒤를 이었다.
“더 내려갈 곳도 없다” vs “제2 사드 보복 우려”
이후 중국 리오프닝 관련주의 주가 향방을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중국 경기가 너무 크게 침체됐던 것이 기저효과로 작용하며, 한중간 정치적 갈등 양상이 악영향을 미쳐도 과거에 비해선 긍정적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관계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발 한한령에 코로나19까지 이어져 온 만큼 조금이라도 대(對) 중국 경제 물꼬가 트일 경우 국내 기업들에는 ‘플러스’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따이공(중국 보따리 상인)’ 중심의 면세 매출 회복세와 중국 여행객의 국내 입증 증가세 등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의 한중 경제 구조에 입각해 중국 리오프닝 효과를 추산하긴 어렵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린다. 중국 당국의 경기 반등을 위한 부양책이 과거 투자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변화했고, 한중간 수출입 구조가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경쟁적 관계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기대했던 ‘낙수 효과’가 크게 약화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갈등의 최대 피해자가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 속에 무역수지, 경상수지 적자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제1 무역 상대국인 중국을 대상으로 한 무역 적자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미중 반도체 전쟁·대만 문제에 휘말려 한중 관계가 악화될 경우 ‘제2 사드 보복’ 사태가 없다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