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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문숙의 현장에서] 수세적·방어적 통상, 국익은 없다

“상대방이 제기하는 사안에 대해서만 수세적·방어적 자세로 통상업무를 해나간다면 한국은 구한말 때처럼 미래가 없다. 통상협상가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국익을 지켜야 한다.”

이는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2017년 두 번째 통상교섭본부장에 취임하면서 강조했던 말이다. 김 전 차장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4~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을 시작부터 최종합의문 서명까지 마무리 짓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진두진휘한 대(對)미국 통상협상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의 협상철학은 ‘10원 한 장 손해 보지 않는 장사치’로 임하는 것으로,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이 힘을 얻어 세계 통상의 틀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예측 가능한 대응 방식으로는 앞으로 총성 없는 통상전쟁에서 백전백패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을 둘러싼 통상전쟁 속에서 번번이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등으로 뒷통수만 맞고 있다. 특히 미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의 세부 지원조건은 초과이익 환수를 비롯한 기업의 수익성 지표와 예상 현금흐름 전망치도 제출해야 하는 황당한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일 “일반적이지 않다”면서 “기업에 부담이 되는 조항들이 상당 부분 완화되도록 미국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IRA에 이어 반도체 지원법 세부 지원조건 대응도 뒷북·늑장 대처라는 지적이다. 이는 김 전 차장의 경고처럼 미국이 제기하는 사안에 대해서만 수세적·방어적 자세로 임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윤 정부에서 임명된 외교·통상수장들은 학계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이들이 산업정책과 협상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나온다. 윤 대통령의 초교 동문인 김성한 고려대 교수와 왕윤종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각각 국가안보실장, 경제안보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다. 통상 전방에는 서울대 교수 출신인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과 이재민 무역위원장(비상근)이 배치됐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이 위원장은 최근 경제안보대사까지 임명돼 이례적으로 중복 직함을 얻었다. 이 위원장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서울대 법대 동기다. 또 나경원 전 의원의 해임으로 공석이 된 기후환경대사에 조홍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임명됐다. 기후변화는 유럽연합(EU)가 도입 예정인 탄소국경조정제도와 맞물려 산업통상의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친기업과 시장원리에 입각한 경제기조를 내세운 윤 정부가 치열한 통상전쟁 속에서 동맹국인 미국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통상인사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제적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하고, 때로는 압박도 하는 장수(將帥)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논리에 밀려 동맹국인 우리나라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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