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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머니스토리] 위험 기피에 왜곡된 중개 기능…은행 결국 이자장사만

이슬람교에서 ‘이자(rabi)’는 노력하지 않고 부(富)를 늘리는 불로소득으로 여겨진다. 신약성경에서도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자는 금지됐다. 맡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은 애초 은행의 본업은 아니었다. 은행(bank)의 영어 어원은 ‘긴 의자’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방코(Banco)’다. 의자에 앉아 상인들의 어음과 환전 등 무역금융을 도와주던 일이 은행의 기원이다.

본업은 아니었지만 오늘날 이자수익은 은행의 핵심 영업부문이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돈을 다른 곳에 쓰지 않고 빌려준 데에 따른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으로 접근했다. 영어에서 이자가 ‘관심(interest)’과 같은 뜻을 가진 이유다. 이슬람에서도 돈 자체에 대한 이자는 금지했지만 투자 결과의 배분은 가능했다. 이슬람 채권 ‘수쿠크(Sukuke)’는 이자가 아니라 배당금 또는 투자수익금으로 분배된다.

오늘날 이자는 은행의 가장 큰 수익원이다. 지난 20여년간 이자율은 꾸준히 하락하고 돈을 빌리는 이들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기회비용’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며 이자는 무거운 짐이 됐다. 비싸진 대출이자에 은행을 보는 사회적 시선도 달라졌다. 과연 은행이 합당하게 돈을 버는 게 맞는 것일까.

남다른 금융업 은행...금융회사보다 금융기관

우리나라가 법으로 은행을 제대로 정의한 것은 1998년이다. 외환위기 전에도 은행법은 있었지만 ‘은행’ 대신 ‘금융기관’으로 표기했다. 비은행 금융회사는 금융기관이 아니다.

은행이 금융기관이 된 이유는 수신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는 강력한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 대출은 모든 금융업의 공통된 영업 수단이지만 수신은 원칙적으로 은행에만 허용된다.

은행에만 수신을 허용하는 이유는 중요한 경제적 역할 때문이다. 은행법은 제1조에서 ▷건전한 운영을 도모하고 ▷자금 중개 기능의 효율성을 높이며 ▷예금자를 보호하고 ▷신용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5가지 목표를 제시한다.

은행이 현대 금융 시스템의 중추인 만큼 특히 주목할 부분이 중개 기능이다.

은행이 누리는 특수한 지위들

중개 기능이란 시중의 자금이 경제 각 분야 곳곳으로 잘 공급되도록 돕는 일이다. 은행이 이 기능을 하려면 돈을 잘 모을 수 있어야 한다. 대중에게 은행은 안전하게 물가 승률을 웃도는 정도의 수익 기대로 자금을 맡기는 곳이다. 대중의 자금을 잘 보관해야 하는 은행에 문제가 생기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어마어마하다.

이 때문에 다른 금융업도 갖춘 예금자 보호장치 외에도 유사시 정부의 구제금융(bail-out)이 제공된다. 덕분에 은행은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때도 자체(stand alone) 신용보다 더 높은 등급을 인정받는다. 그만큼 더 싼 값에 돈을 모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은행은 외환시장의 핵심 구성원이기도 하다. 현행법상 외환시장 참여 등 제한 없는 외국환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은 은행뿐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은행에서 돈을 빌린 기업 상당수가 돈을 갚지 못했다.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적 자금으로 은행과 기업을 구했다. 부실 은행들이 통폐합됐고 상당수 은행 지분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넘어갔다. 덩치가 커진 은행들은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불리고 비은행 금융회사들까지 인수해 금융지주회사가 됐다. 금융지주의 일원이지만 은행의 특수한 지위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외환위기 전 은행은 주로 개인이 예금한 돈을 기업들에 빌려주며 돈을 벌었다. 환난 이후 기업들은 빚을 줄인다. 금리가 하락하고 정부도 내수 부양에 나서며 가계도 차입을 시작한다. 신용카드로 소비를 하고 대출로 집을 샀다. 은행들은 보유했던 부실기업 여신을 국책은행에 넘기고 가계대출에 집중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건전성 규제가 강화되고 은행은 철저히 안전 위주로 영업을 제한한다.

일반은행의 기업대출 비중은 2000년 말 59%에서 2008년 말 51%, 2021년 말 47%로 떨어졌다. 기업대출의 87%가 중소기업이고 그 가운데 54%가 사실상 개인인 개인사업자다. 2000년 말 대출 가운데 담보나 보증이 없는 신용 비중은 43.6%였지만 2021년 말 25.3%까지 떨어졌다. 우리나라 은행 연체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위험관리 성과일 수 있지만 위험 기피 결과일 수도 있다.

개인대출 집중에 은행 이익 급증

금융위기 이전 국내 일반은행 자기자본수익률(ROE)은 두 자릿수를 유지했었다. 금융위기로 전 세계적인 규제 강화가 이뤄지며 한 자릿수로 떨어지고 2016년에는 1%대까지 추락한다. 2012년 이후 금리 하락에 대출이 급증하며 이익은 빠르게 회복된다. 일반은행 원화대출은 2013년 3.9% 늘었고 부동산시장이 회복되던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6% 이상 증가한다. 집값이 급등한 2020년에는 무려 10.6%나 급증했다.

대출 성장으로 은행 이익이 크게 늘었지만 수익성 지표로만 보면 금융위기 전보다 폭리를 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7년 순이익 11조원을 기록할 당시 대출 자산은 약 980조원이었다. 2017년 11조원의 순이익을 냈을 때 대출 자산은 1522조원이었다. 이자수익을 가늠할 수 있는 예대금리 차 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2000~2007년)이나 그 이후(2008년~2021년 9월) 모두 평균 1.88%포인트로 비슷하다.

2021년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은행들의 수익성이 더 높아진다. 2017년 1.68%포인트에서 2021년 9월 1.5%포인트까지 떨어진 은행 순이자마진(NIM)은 그해 12월 1.52%포인트로 높아지고 2022년 3월 1.61%포인트, 6월 1.65%포인트로 계속 확대됐다. 2022년 9월까지 일반은행 순이익은 10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가량 늘었다. ROE는 2021년 연간 6.97%에서 2022년 9월 8%로 껑충 뛰었다.

금리 높아지며 은행 이익은 더 늘어

2021년 7월 이후 올 1월까지 한은 기준금리는 0.5%에서 3.5%로, 3%포인트 인상됐다. 기준금리 인상 직전인 2021년 6월 이후 지난해 말까지 은행 정기예금(6개월 미만) 금리는 0.69%에서 3.88%로 3.19%포인트나 상승한 반면, 대출 금리는 2.77%에서 5.56%로 2.79%만 높아졌다. 대출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덜 올랐지만 은행 이자수익은 더 늘어난 비밀은 원가에 있다.

2000년 410조원이던 일반은행의 원가성 자금 조달은 2000년 410조원에서 2021년 1552조원으로, 3.9배 늘었다. 요구불예금은 24조원에서 208조원으로, 9.7배나 급증했다. 요구불예금은 이자가 거의 없어 은행은 비원가성 조달로 분류한다. 초저금리에 가계도, 기업도 정기예금에 돈을 두기보다 투자에 필요한 대기자금을 요구불예금으로 보관했던 결과다.

원가가 낮아지면서 은행 이자 영업효율은 더 높아진다. 2008년에는 일반은행 이자수익 66조3277억원 가운데 39.6%인 26조2748억원이 순수익이었다. 2021년에는 43조원(이자율 절대수치가 낮아지면서 이자수익 총액은 감소) 가운데 72.7%인 31조2890억원이 순수익이다.

주담대 규제로 급증한 신용대출 은행 이익 기반 강화

2017년 이후 정부가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금융 규제를 강화한다. 주택담보대출이 막히자 부족한 자금을 신용대출로 충당하려는 수요가 몰렸다. 예금은행 기준 대출 잔액을 보면 2016년 말에는 주담대가 434조원, 신용대출이 170조원이었다. 가계대출이 정점이던 2021년 말에는 각각 630조원과 280조원이다. 주담대는 45% 늘었지만 신용대출은 65% 가까이 급증했다.

금리도 신용대출이 더 크게 올랐다. 2021년 6월부터 2022년 말까지 주담대 금리는 2.74%에서 4.63%로 1.89%포인트 오르는 데에 그치지만 이 기간 신용대출 금리는 3.75%에서 7.97%로 4.22%포인트나 뛴다.

한은의 긴축 이후 가계대출 증가세는 꺾였지만 자금시장이 경색되며 기업들은 회사채 대신 다시 금융기관에서 차입을 시작했다. 가계대출 제한에도 은행 대출은 계속 늘었고 이는 이자이익과 증가로 이어졌다. 기업대출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대출금리가 특히 더 가파르게 올랐다. 중소기업의 2022년 말 기준 대출금리 5% 이상 비중은 77.3%로, 전년 대비 9.6배나 높아졌다.

엄청난 성과급과 희망퇴직금, 은행 임직원들 과연 받을만한가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은 1조3000억원 이상의 성과급을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년의 1조709억원보다 20%가량 많다. 희망퇴직자는 퇴직금과 위로금 등을 포함해 평균 6억~7억원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이 거둔 경영 성과가 임직원들의 노력의 결과일까. 2021년 금융권 직원 1인당 순이익은 증권이 2억2000만원, 손해보험이 1억4000억원, 은행과 생명보험은 1억3000만원 수준이다. ROE를 보면 증권(12.4%)과 손해보험(9.22%) 등이 모두 은행보다 높다. 생명보험은 ROE가 4.05%로 가장 낮았지만 직원 1인당 자산은 412억원으로 은행(297억원)보다 많았다.

지난 10년간 꾸준했던 은행의 대출 확대와 이익 증가에도 은행지주 주가순자산배율(PBR)은 0.5배를 하회하고 있다. 시장가치가 청산가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비은행 금융주 역시 PBR 1배 미만이 대부분이다. 선진 주요 은행들의 ROE는 두 자릿수이지만 국내 은행들은 7%대다. 수익성 높은 이자 영업구조와 과점 환경에도 은행의 경영 효율이 타 금융권 대비 높지 못하다는 뜻이다.

노사 은밀한 거래가 가능한 지배구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금융 서비스도 온라인과 모바일로 대부분 이뤄지고 있다. 은행 대면 점포의 중요성은 점차 줄고, 필요한 인력 수도 제한적이지만 국내 노동법상 강제적인 대규모 감원은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노사가 타협한 것이 남다른 희망퇴직 조건이다. 은행권 희망퇴직자는 법정 퇴직금에 3~5년치 급여 그리고 각종 복지 혜택까지 받게 된다. 은행에서 시작된 이 제도는 은행지주 내 타 금융사를 거쳐 전 금융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 은행지주 회장이 되면 우호적인 사외이사진을 구성해 큰 어려움 없이 3연임이 가능하다. 뚜렷한 대주주는 없고 주주 절반 이상은 해외에 있다. 이자 영업으로 안정적 실적을 거두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노조 등 내부 반발만 피하면 자리를 지킬 수 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은행 영업실적인 원화대출금은 1336조원에서 1862조원으로, 39% 증가했다. 이 기간 판매관리비는 58%, 급여와 복리후생비는 각각 72%, 75% 늘었다. 명예퇴직급여는 1164%나 폭증했다.

2021년 일반은행의 인건비 지출은 12조9484억원으로, 전년(11조530억원) 대비 17%나 증가했다. 재직 직원에 대한 급여와 복리후생비 지출이 9조2845억원에서 9조9918억원으로 6.8% 늘었고 명예퇴직급여는 9076억원에서 2조2992억원으로 2.5배나 급증했다.

과점 깨뜨리면...깨지기나 할까

정부가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과점을 깨뜨리려면 숫자를 늘리면 된다. 새 은행을 만들어도 단기간에 여·수신 기반을 얼마나 갖출지는 미지수다. 민간대출 규모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2배 이상까지 팽창한 상태다. 돈을 굴릴 곳이 여의치 않으면 수신도 어렵다. 새 은행이 등장한다고 기존의 과점이 당장 깨지는 것은 아니다.

은행 개혁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국민의 편익을 증진시키면서 은행이 이자 장사에만 집중하지 않고 자금 중개 기능에 진지해지도록 해야 한다. 건전성 관리에만 쏠린 정부의 감독 관행도 은행을 이자 장사에만 골몰하게 만든 이유다. 비대면의 확산으로 높아진 비용효율이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야 한다. 은행 간 대출 이동이 비대면으로도 손쉽게 가능하면 된다. 은행 입장에서 일단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을 낮춰야 하고 원가를 높이는 성과금이나 퇴직위로금을 무리하게 지급하기도 어려워진다.

은행이 유연한 원가구조를 갖도록 경직된 노동법 체제를 손질할 필요도 있다. 막대한 희망퇴직비용은 결국 은행 이용자들의 부담이다. 지배구조 개편도 서둘러야 한다. 최고경영자(CEO)가 근본적인 혁신을 이행하고 그 성과에 따라 보상과 연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주주를 대표할 수 있는 이사진을 구성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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