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전략적 실패 극적 부각
재선 위한 정치적인 선전 성격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맞아 극비리에 이뤄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깜짝 방문은 러시아의 침공이 전략적으로 실패하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 내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을 과시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 자신의 재선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행은 전쟁 1주년을 맞아 예정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국정 연설 하루 전날 이뤄졌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정치적 패배를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우크라 수도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1년 전 어두운 밤 세계는 말 그대로 키이우의 함락에 대비하고 있었다”면서 “1년 후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민주주의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당신과 함께 서 있고 세계가 당신과 함께 서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병합하거나 친러 국가로 만들겠다는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가 실패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CNN은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은 교착상태에 빠진 전황에 대해 변명을 해야 할 푸틴 대통령에게 압박을 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키이우 행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통제하지 않고 있는 전장에 발을 딛은 첫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백악관은 19일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DC를 떠나 수송기를 타고 폴란드에 도착한 뒤 기차로 10시간을 달려 키이우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우발적인 공격을 막기 위해 러시아 측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행을 알렸다. 푸틴 대통령은 적국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후원자인 미국의 국가원수가 전장 한가운데를 누비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고 공식적인 논평조차 내놓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 연방 보안국(FSB) 출신의 러시아 극우 논평가 세르게이 마르단은 텔레그램에서 “바이든 할아버지를 바흐무트(우크라이나)로 데려온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며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크렘린궁의 무기력함을 꼬집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서방 진영의 태세를 보다 공고히 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유럽 내 리더십이 여전히 확고하다는 점도 드러냈다.
그는 5억달러(약 6500억원) 규모의 새 군사 원조 계획을 제시하면서 “지원은 전쟁이 계속되는 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서방 국가 내에서 우크라 지원에 대한 피로감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서방의 지원이 언젠가는 중단될 것이라는 러시아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최근 미국 공화당 강경파는 미국의 대 우크라 지원을 중단하고 평화 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내놓은 바 있다.
토르스텐 베너 글로벌공공정책연구소 소장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논의의 공간이 점차 좁아지고 있지만 백악관의 결단 덕분에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피터 노이만 킹스칼리지런던 교수는 “유럽 정책 입안자들이 전략적 자율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은 실제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미국이 이끌 때에만 유럽국가들이 함께 행동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하게 믿고 있다”면서 “여러분들이 우크라이나에 투자하고 이익을 얻기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이 2024년 재선을 위한 국내 분위기 조성용으로 키이우행을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번 여행이 아프가니스탄 철수,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가격 충격으로 인해 떨어진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면서도 “수십년 간 여론조사는 외교 정책이 대선을 좌우하는 경향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역사를 만든다고 해서 반드시 선거에서 승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평가했다. 원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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