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중국의 정찰풍선 사태 이후 미국과 중국의 외교 수장이 18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전격 회동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6일 정찰풍선과 관련해 “(중국과의) 신냉전은 없다”면서 갈등 악화 차단에 나선 지 이틀만이다.
양국이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일단 이른바 ‘풍선 사태’를 둘러싼 긴장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정찰풍선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 주요 현안을 놓고 분명한 입장차를 확인하면서 당분간 풍선 사태 이전으로 양국관계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독일 뮌헨안보회의(MSC)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미 상공에서의 정찰풍선 발견과 이후 블링컨 장관의 방중 취소 등으로 불거진 갈등 국면을 일단락 짓고 대화 모드로 복귀하겠다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블링컨 장관과 왕위 위원은 정찰풍선 사태를 놓고 두 사람이 서로 할 말을 다 하면서 갈등 격화의 직접적인 원인인 풍선 사태마저 봉합하지 못한 모습이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회동과 관련해 “(블링컨 장관은) 미 영공 내 중국의 고고도 정찰풍선으로 인한 미국 주권 및 국제법 위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면서 “주권 침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5개 대륙에 걸쳐 40여 개국의 영공을 침범한 중국의 고고도 정찰풍선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 노출됐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도 “(왕이를 만나) 중국 정찰풍선의 침범을 규탄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고 했고, 이은 NBC와의 인터뷰에서는 왕이 의원이 풍선 사태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왕의 의원은 미국이 자국의 풍선을 격추한 것이 무력 남용이라며 양국 갈등의 책임을 미국으로 돌렸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왕 위원은 블링컨 장관을 향해 ‘개현경장(改弦更張·방침이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이라는 성어를 언급한 뒤 “무력 남용이 중미 관계에 끼친 손해를 똑바로 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국 외교 수장들은 풍선 문제 외에도 우크라이나 사태, 대만 문제, 반도체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며 사안마다 각을 세웠다.
국무부는 성명에서 이날 블링컨 장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중국의 대러 군사지원 가능성에 대해 “중국이 러시아에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거나 체계적인 제재 회피를 지원했을 때 발생할 영향과 결과를 경고했다”고 전했다.
왕이 위원의 경우 반도체법과 관련 ‘군자호재 취지유도(君子愛財, 取之有道· 군자도 재물을 좋아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그것을 취한다는 의미)’라는 표현을 언급하면서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을 봉쇄하고 압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외신들은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 기대했던 이번 회동이 입장 차만 확인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대화가 아닌 말그대로 ‘할 말만 하고’ 떠난 격이 됐다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회담 전 양국의 낙관적 기대와 실제 회담 결과가 차이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WSJ는 “양측 모두 정찰풍선을 둘러싸고 고조된 긴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이번 회담이 (양국 간의) 불유쾌한 분위기를 다시 개선할 지는 확실치 않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국무부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블링컨이 강경한 어조로 회담에 임한 것으로 묘사됐다”면서 “한 국무부 고위 관리는 블링컨이 중국 관리(왕이)에게 직설적이었다고 강조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