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도, 나경원도 아니었다. 이번 설날 밥상머리 화두는 단연 ‘난방비 폭탄’이었다. 전년 동월 대비 2배, 전월 대비 4배 가까이 뛰었다는 하소연이 쏟아졌다.
도시가스 요금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가격에 연동되는데 이 가격이 급등한 게 ‘난방비 폭탄’의 원인이 됐다. LNG 평균 가격은 2021년 MMBtu(열량 단위)당 15.04달러에서 지난해 34.24달러로 128% 폭등했다. 이달 초 27달러로 다소 진정됐지만 2020년 7월(2.4달러)에 비해선 10배 이상 많다.
도시가스요금은 2분기에 더 오른다. 한국가스공사의 대규모 적자를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스공사의 미수금(가스 판매가를 낮게 책정해 발생한 일종의 영업손실)은 2021년 1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8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그냥 두면 더 버티기 힘든 한계상황이다.
설날 밥상머리에서 터진 ‘난방비 폭탄’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선 정책의 적기성이다. LNG 가격은 이미 문재인 정부 때 급등세를 보였다. 인기 없는 정책이었더라도 당시에 일정 부분 도시가스요금에 반영해야 했다. 미루다 인제 와서 한꺼번에 반영되니 ‘폭탄’이 됐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연금개혁도 유사한 구조다. 표 떨어진다고 계속 미루거나 어설프게 진행하면 어느 날 부지불식간에 발등의 불로 다가온다.
둘째, 공기업 적자 문제다. 본업에서의 적자도 문제이지만 비효율 방만경영이 심각하다. 이미 360여개 공공기관의 부채가 583조원(2021년)에 달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 세금이 109조원(2022년)이나 된다. 이러니 막바지에 몰려 도시가스료,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잇는다.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 정원 감축 등 메스를 들었는데 이참에 확실히 수술해야 한다.
셋째,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각심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23일 “물가상승률이 1분기 4%대, 하반기 3%대로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물가와 함께 경기·금융 안정도 고려한다”고 말해 금융 완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난방비 폭탄’에서 보듯 물가상승 요인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물가 잡기에 실패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물가를 1% 낮추려면 GDP의 4%를 포기해야 한다”(폴 새뮤엘슨)는 경고도 있지 않은가.
역대급 한파가 닥치면서 난방 수요 증가로 전력망이 마비되는 ‘블랙아웃’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부 취약계층은 가스료·전기료 부담에 오히려 난방을 줄이겠다고 한다. 슬픈 현실이다. 정부의 세심한 정책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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