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만에 ‘로또분양 → 미분양’ 왜?
작년 수도권 웬만한 곳은 수십~수천대 일 경쟁
이달 들어선 44개 사업장 중 24곳 미분양 발생
내년 전망 더 암울 ‘밀어내기’ 분양 급증도 한몫
▶ 집값 하락기라 미분양 늘어났나?
노무현·문재인 정부 폭등장에서도 미분양 증가
미분양 감소했던 박근혜 정부가 되레 집값 하락
일시적인 수요-공급 ‘미스매치’가 주요 원인으로
▶ 현재의 미분양 증가 원인은?
고금리 따른 수요위축이 원인…금리 향배 주목
대규모 입주 등 뚜렷한 공급량 증가 없어 변수
준공후 미분양 많지 않아 조만간 반등 점치기도
지난 14~16일 청약접수를 한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 ‘파크릭스’에서 결국 미분양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수요가 가장 많다는 84㎡(이하 전용면적)에서 108가구나 미달됐습니다. 화성 새 아파트 분양시장은 지난 해 1순위 청약자만 30만명 이상 몰렸던 곳입니다. GTX-A노선이 확정된 동탄2신도시의 인기는 말그대로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302가구 모집에 무려 24만4000여명이 청약한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년도 안 돼 미분양이 생긴 겁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순위 내 청 약 일정이 끝난 44개 사업장 중 미분양이 발생한 곳은 24곳이나 됩니다. 전체 분양 단지 중 절반 이상에서 미분양이 나왔네요. 경기도와 인천시 등 수도권에서도 9개 단지에서 미분양이 생겼습니다. 수도권 웬만한 곳이면 ‘로또’라며 수십대일의 경쟁률을 기록하던 시대는 1년만에 이렇게 변했습니다.
국토부가 가장 최근 집계한 9월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 규모는 4만1604가구인데요. 전월(3만2722가구)보다 27%(8882가구) 늘었습니다. 수도권 증가 속도는 8월 5012가구에서 9월 7813가구로 한 달 만에 56%(2018가구) 폭증했네요. 작년 10월(전국 1만4075가구, 수도권 1290가구)부터 11개월째 내리 증가하는데, 최근엔 상승세가 가팔라졌습니다.
최근 미분양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건설사들이 그동안 밀렸던 분양일정을 서두르는 소위 ‘밀어내기 분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약홈에 따르면 이달 1~20일 전국 56개단지에서 2만9532가구에 대한 청약을 마쳤거나 청약 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달 남은 기간과 12월에도 분양이 계속 몰릴 전망입니다. 부동산R114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1월 분양을 계획한 곳은 전국 89개 단지, 총 6만1312가구(수도권 43개 단지, 2만9653가구)라고 합니다. 이는 작년 11월(3만413가구)의 두 배 규모인데요. 11월만 따졌을 때 2015년(7만 4861가구) 이후 가장 많다고 하네요.
한 대형건설사 주택담당 임원은 “내년 상황을 더 나쁘게 보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미뤄 놨던 수도권 외곽지역 사업지부터 사업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을 때 분양을 하는 게 계약률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고 보는 겁니다.
사실 이렇게 밀어내기 분양을 하는 사업지는 대부분 서울 중심지 보다 외곽이 많습니다. 가뜩이나 수요가 위축된 상황인데, 인기가 없는 지역이 많으니 미분양은 늘어날 수밖에 없겠죠.
새 아파트 분양이 두려운 시대
업계에서 미분양은 주택시장의 바로미터로 통합니다. 새 아파트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주거시설이기 때문입니다. 새 아파트까지 사람들이 찾지 않게 돼 미분양이 느는 건 시장 상황이 그만큼 심각해 졌다고 보는 겁니다.
사실 최근 미분양이 생긴 단지는 대부분 사정이 있는 경우가 더 많긴 합니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비교해 너무 비싸거나 입지가 좋지 않은 ‘나홀로’ 아파트인 경우입니다. 서울 인기지역엔 여전히 사람이 많이 몰립니다. 이달 14일 청약접수를 한 서울 중랑구 중화동 ‘리버센 SK뷰’ 336가구엔 1순위에 2793명이 청약했습니다. 평균 8.3대1, 최고 25대1을 기록했죠. 같은 날 1순위 청약접수를 한 강동구 둔촌동 ‘더샵 파크솔레이유’에는 일반가구 53가구 모집에 831명이나 청약통장을 썼습니다. 평균 15.7대1, 최고 72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분양가가 합리적이고 입지가 좋으면 사람들은 여전히 줄을 서며 청약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최근 ‘어~ 여기서도 미분양이 나온다고!’ 갸우뚱한 단지가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동탄신도시처럼 지난해까지 사람들이 대거 몰리던 인기지역에서도 미분양이 나온 게 대표적입니다.
최근 이런 사례도 있었습니다. 지난 9월 분양한 의왕시 내손동 S아파트의 경우인데요. 일반분양 522가구 모집에 2900명이 청약해 평균 5.5대1로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진행된 계약기간에 계약을 하지 않은 당첨자 비율이 56%나 됐습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 됐지만, 계약을 포기한 겁니다. 이 단지는 이후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지만 단 6채만 추가 청약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청약통장을 쓸 때와 당첨이 된 이후 계약을 할 시점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셈입니다. 단 몇 개월 만에 청약자들의 시장 인식이 부정적으로 돌변한 겁니다. 실제 KB국민은행이 중개업소를 상대로 조사한 매매가격전망은 매월 빠르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수도권 아파트값이 향후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 중개업자 비율이 올 5월만 해도 28%였지만 10월엔 74.4%까지 높아졌습니다. 너도나도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니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 두려운 겁니다.
미분양 원인 두 가지
기본적으로 미분양이 늘어나는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수요가 줄거나 공급이 과도하면 증가합니다. 어떤 쪽이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진 상황입니다.
역대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가장 많았던 시기인 2008년엔 수요가 감소한 게 미분양 증가의 원인이었습니다. 당시 주택 매수 희망자들은 금리인상과 경기침체 우려로 일시에 관망세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니 2007년 11만2254가구이던 미분양이 2008년엔 16만5599가구로 폭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보다 조금 앞선 2006년엔 상황이 다릅니다. 당시 집값이 역대급으로 폭등하던 시기이므로 미분양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분양은 급증하고 있었습니다. 2005년 5만7215가구이던 미분양이 2006년엔 7만3773가구로 대폭 늘었습니다. 주택 수요가 위축 됐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단기간 과도한 공급 증가가 미분양의 원인이었습니다.
집값이 많이 올랐던 노무현 정부에서 건설사들은 너도나도 아파트 인허가를 받았습니다. 분양만 하면 인파가 몰리고 완판을 하니 너도 나도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분양이 몰렸고 비인기지역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반등하던 2015년도 마찬가지입니다. 2014년 4만379가구이던 미분양이 2015년 6만1512가구로 급증했습니다. 주택수요가 살아나면서 집값이 오르던 시기였는데, 공급이 일시에 몰렸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침체된 시장을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규제완화를 했는데, 그 효과로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묵혀 두었던 분양 사업을 적극 확대했던 게 원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미분양 증가가 반드시 집값 하락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값이 오르는 시기에도 일시적인 ‘수급 미스 매치(수요와 공급 불일치)’로 미분양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미분양이 늘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2016년 5만6413채였던 전국 미분양이 2017년엔 5만7330채, 2018년 5만8838채로 증가했습니다.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 폭등 때문에 한 달 걸러 한 번씩 규제대책을 내 놓았을 때인데도 말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 때 인허가를 받은 물량이 대거 쏟아지면서 일시적으로 미분양이 늘었던 겁니다. 만약 당시 미분양 증가를 집값 하락의 전조로 여겼다면 시장을 잘못 읽은 겁니다. 그 이후로 폭등세가 이어졌으니까요.
수요 위축으로 늘어난 미분양 ‘계속 늘긴 어렵다?’
2022년 하반기인 지금은 어떤 이유로 미분양이 늘고 있을까요? ‘공급 급증’일까요? 누가 봐도 공급이 많은 상황은 아닙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주택 건설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10월 전국 아파트 분양전망지수는 43.4으로 2017년 11월 통계 집계 이래 5년여 만에 가장 낮았습니다. 0~200 범위에서 100 미만이면 ‘분양 감소’를 전망한 건설사들이 더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건설산업연구원도 최근 내놓은 내년 건설사 아파트 공급 전망을 올해보다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구체적으로 내년 분양 승인 규모가 약 27만가구로 올해(31만 가구) 대비 4만가구 준다고 봤습니다. 이는 2013년 이후 최저치라네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건설사들이 일시적으로 밀어내기 분양을 하고 있지만, 경기여건, 인허가 흐름 등을 봤을 때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지긴 어렵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분양 증가에 대해 금리인상으로 인한 주택 수요 감소를 원인으로 꼽습니다. 집값 하락을 예상하고 집을 사지 않는 추세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금리인상 추세가 꺾이면 어떻게 될까요?
공급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 미분양 증가세는 계속 이어지긴 어렵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특히 서울에선 분양 물량이 별로 없습니다. 미분양이 늘어나려고 해도 늘 수 없는 구조입니다.
최근 집값 하락세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과거 집값 하락기엔 주택 수요 위축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장에 입주가 대거 늘어났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재국 책사컨설팅 부동산연구소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진짜 집값이 하락할 땐 공급 증가가 따라왔습니다. IMF 직후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도 처음엔 금융위기로 인한 매수세 위축으로 집값이 하락했지만 시장은 곧 반등했어요. 그런데 진짜 집값이 본격적으로 떨어진 건 그 이후 있었던 대규모 신도시 입주와 미분양 증가가 원인이었습니다.”
주목해야할 ‘준공후 미분양’ 흐름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지표가 ‘준공후 미분양’입니다. 다 지었는데도 아직 미분양 상태의 아파트입니다. 과거 집값 폭락기의 공통점은 준공후 미분양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정부에선 준공후 미분양 통계를 2007년부터 제공하는데요. 통계 작성 이래 준공후 미분양이 가장 많았던 때가 2009년입니다. 5만87가구로 역대 유일하게 5만가구가 넘었을 때인데요. 준공후 미분양이 최고치를 찍은 이듬해부터 서울 아파트값은 마이너스 변동률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2009년엔 2기 신도시 중 속도가 빠른 편이었던 판교신도시, 파주 운정신도시 등이 본격적으로 입주를 하던 때입니다. 2010년부턴 광교, 검단 등 수도권 주요지역에 대규모 단지가 입주합니다. 쪼그라들었던 매수 심리에 더해 입주량이 폭발한 겁니다. 매수 심리가 위축됐는데, 시장에 실제로 아파트가 대거 늘어나니 집주인들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습니다. 아파트값이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이 때부터였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준공후 미분양이 아직 증가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준공후 미분양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준공후 미분양은 문재인 정부 내내 1만채가 넘었습니다. 1만채 밑으로 떨어진 건 2021년 3월(9965채)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감소해 올 5월 역대 가장 적은 6830채까지 내려갔습니다. 이후 조금씩 늘긴 했는데, 7월 7388채, 8월 7330채, 9월 7189채로 다시 줄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진짜 위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해석합니다. 미분양이 쌓이고 시간이 2~3년 지나면 준공후 미분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준공후 미분양은 건설사에겐 ‘부도 수표’와 같습니다. 다 짓고도 팔지 못하고 있으면 은행으로부터 공 사를 위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한 돈을 갚을 시기가 불투명해지고, 매달 이자 부담까지 떠안아야 합니다. 하청업체에게도 자금을 주지 못해 엄청난 피해를 줍니다. 자금 마련을 위해 분양가의 20~30% 선에서 ‘땡처리’(할인 판 매)를 벌이는 곳도 나타납니다. 주택업체들이 줄도산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는 순간입니다. 반면, 시장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준공후 미분양이 많지 않은 걸 집값 반등의 근거로 여깁니다. 공급량이 받쳐 주지 않기 때문에 금리여건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단기간 반등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어쨌든 주택시장에서 회복기가 되면 미분양은 가장 먼저 줄어듭니다. 사람들이 새 아파트부터 찾기 때문입니다. 분양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미분양이 줄기 시작합니다. 역대 가장 심각한 주택시장 침체를 겪고 있는 지금, 미분양 흐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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