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흠집난 CEO, 물갈이 신호탄되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를 마친 뒤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주요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은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며 “최고경영자(CEO)가 합리적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선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밝혔다.
금감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BNK금융지주 회장이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하고 우리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에서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주목된다.
특히 감독당국이 사모펀드 사태를 비롯해 횡령과 외환 이상거래 등 금융사고를 들여다보고 있는가운데, 이사진에게 책임 경영을 주문한 것이어서 더욱 무게감이 있다. 경영 성과에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내부통제 이슈 등을 토대로 회장 추천에 나서야한다는 당국의 ‘가이드라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이 원장은 "은행지주그룹 전반의 내부통제 체계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내부통제 체계를 경영진에게만 맡겨 놓으면 성과 우선주의 등으로 실효성이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이사회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에 금융지주들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마진 확대로 각 금융지주사들은 연일 실적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호실적을 무기 삼아 연임 가도를 달리려던 회장들 입장에서는 감독원장의 ‘도덕성’ 발언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이사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재차 강조한만큼 내부 정치나 관행에 편승해 지배구조를 구축하지 말라는 뜻이 담겼다고 보고 있다.
현재 각 금융지주 회장들은 올해말부터 줄줄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NH농협금융의 경우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포함해 권준학 NH농협은행장, 김인태 NH농협생명 대표이사 등이 올 연말로 임기가 끝난다. 금융권에서는 그간 농협금융 회장이 2년 임기를 마친 뒤 1년 더 연장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만, 정부 입김이 센 특성상 외부인사설도 제기되고 있다.
권준학 행장의 경우 우성태 농협경제지주 대표와 함께 경기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교체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농협중앙회가 CEO 간 지역 안배를 고려하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또 다른 경기도 출신인 우성태 대표가 취임한지 1년밖에 안된데다 농협은행장이 2년 임기를 채우면 연임없이 자리에 물러난 점을 고려할 때 교체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내년 3월 회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특히 손태승 회장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얼마전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원장이 금융위원회의 중징계를 후 손태승 회장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언급했던만큼 이날 발언 또한 손 회장에 대한 추가 압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금융은 오는 25일 정기이사회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우리금융은 은행직원의 600억대 횡령사건으로 내부통제 부실이 도마에 오른 상태다.
조용병 회장의 경우, 지난 6월 채용비리 관련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받아 법적 리스크를 덜어내게 됐다. 다만 각종 채용비리와 펀드 부실판매 등 논란 등에도 연임 행보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도덕성’ 꼬리표를 떼는 게 연임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조원대 불법 외환거래로 문제가 된 진옥동 신한행장 임기는 12월에 끝난다.
자녀 특혜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의 경우, 임기를 5개월여 앞두고 7일 회장직에서 조기 사임한 상태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또한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2018년 초 채용비리 논란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윤 회장의 경우 내년 11월에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도덕성’이라는 키워드를 언급한 점, 내부통제에 대한 강조가 수차례 나온 걸 봐서는 현재 회장들에 대한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읽힐 수 밖에 없다”며 “노골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일부 교체에 대한 필요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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