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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며칠 전 혼자 서울 중구 신당역에 다녀왔다. 입구에 다다르자 불과 열흘 남짓 전 끔찍한 참극이 벌어졌던 곳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주위는 차분했고, 정돈돼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그 사건,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앞에 다다르자 추모 공간이 보였다. 그곳에 설치된 분향소, 인근 벽에 시민들이 붙이고 갖다 놓은 포스트잇, 국화와 마주치자 당시 비극이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포스트잇에 적힌 시민들의 메모는 더 뼈저렸다. ‘노동하는 공간이 나를 위협하는 공간이 되다니 너무 슬프다’, ‘스토킹이 살인으로 번지게 놔둔 판사와 (서울교통)공사는 반성하고 각성하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중 눈에 띈 메모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또다시 같은 아픔이 반복되는 사회’ 등의 글귀였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돼도 뾰족하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내포돼 있었다.

역시 글로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여성 직장인 최모(28) 씨는 “바뀌지 않는 현실을 확인받는 것 같아 괴로웠다. 당분간 뉴스를 보지 않기로 했다”고 본지에 털어놨다.

실제로 이 같은 끔찍한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해에만 세간에 알려진 사건이 세 차례나 됐다. 바로 ▷3월 ‘노원구 세 모녀 살해 사건’ ▷11월 ‘전 여자친구 스토킹 살해 사건’ ▷12월 ‘전 여자친구 가족 살해 사건’이었다. 이들 사건의 피의자는 모두 신상이 공개됐다. 각각 김태현(26)·김병찬(36)·이석준(26)이다.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 후 안착기에 접어들어야 하는 올해에도 이 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2월과 6월에도 각각 서울 구로구와 경기 안산시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가 살해당했다. 모두 스토킹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들 사건을 곱씹어 보면 여러 원인이 나온다. 가해자-피해자 간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수사기관(경찰·검찰)과 사법부(법원)의 대응이 미흡했다. 특히 이들 기관이 평소 갖고 있던 안일한 인식은 구속영장의 신청·청구·발부를 적시에 이뤄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스마트워치의 오류 등으로 인한 경찰의 늦은 대응도 사건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신당역 사건’ 이후 당국의 대응은 과거 사건과 판박이라 한숨부터 나온다. 해당 사건 발생이 일어난 지 닷새 지난 이달 19일 경찰청은 전국 스토킹 사건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지난해 11월 ‘김병찬 사건’ 이후 역시 서울경찰청이 내렸던 조치와 비슷하다. 달라져 보이는 조치는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 4호(유치장 유치)를 적극 활용하기로 검경이 뜻을 모았다는 것 정도다.

물론 해당 조치도 과거에 언급됐지만, 이번 ‘전주환 사건’과 김병찬 사건 때 경찰은 긴급조치 4호를 신청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 같은 ‘땜질 처방’만으로는 또 다른 희생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가진 ‘안일한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이달 20일까지 피의자가 검거된 스토킹 사건 중 실제 잠정조치 4호가 적용된 사례는 경찰이 신청한 사건의 4% 남짓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이들 기관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방증이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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