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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레국민, 극단적 양성평등 거부...개헌안 국민투표 부결
42년 ‘독재 軍정권 헌법’ 개정 좌절
개표율 99.4% 기준 찬반 38% 대 62%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 헌법’에 거부감
보리치 대통령 문제조항 수정 등 통해
“개헌 절차 처음부터 다시 추진” 관측
4일(현지시간) 칠레 선거관리국(Servicio Electoral)의 개표 결과 개표율 99.4% 기준으로 반대가 62%로 38% 불과했던 찬성 의견을 압도하자 수도 산티아고에 모여 결과를 기다리던 개헌에 반대하는 측의 시민들이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AFP]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제정된 42년 묵은 헌법 대신 새 시대에 맞는 새 헌법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좌절됐다.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헌법’이라 불리는 개정안에 포함된 극단적이고 추상적인 표현들에 대해 다수의 칠레 국민들이 거부감을 드러낸 결과다.

지난 3월 취임 당시부터 개헌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꼽으며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던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36)로서는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보리치 대통령은 이 같은 결과에 굴하지 않고 논란이 된 내용을 수정해서 새로운 개헌 절차에 착수, 개헌 과제 완수 의지를 보일 전망이다.

칠레 선거관리국(Servicio Electoral)은 4일(현지시간) 개헌 찬반 국민투표 개표 결과 개표율 99.4% 기준으로 찬성 38.12%(483만725표), 반대 61.88%(784만2477표)로 각각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유효표 과반 찬성이 필요했던 개헌안은 부결됐다.

개헌안이 부결된 것은 급진적 내용을 담은 개헌안의 일부 조항들이 국가 통합을 해칠 수 있다는 반대 측의 주장이 국민들에게 더 설득력있게 와닿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정권(1973~1990년) 시절인 지난 1980년 제정된 현행 칠레 헌법은 결정적으로 2019년 10월 불평등 개선 촉구 시위를 시작으로 개헌 목소리가 커졌다. 개헌 착수 여부를 묻는 2020년 국민투표에서는 78%가 새 헌법 제정에 찬성하면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후 성비 균형을 맞추고 원주민들도 포함한 제헌의회(155명)가 구성돼 초안을 작성한 뒤 정부에 제출했다.

“칠레는 사회·민주적 법치국가다. 칠레는 다민족적이며 상호 문화적, 지역적, 생태적 국가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새 헌법에는 원주민 자결권 확대와 양성평등 의무화 등을 강화하는 내용이 폭넓게 담겼다. 11개 장 388개 조항으로 돼 있는데, 조항 수는 전 세계 헌법 중 가장 많은 수준이다.

다만, 일부 조항 표현이 추상적인 데다 ‘공기업 구성원 남녀 동수’, ‘난민 강제 추방 금지’, ‘자발적 임신중절 보장’ 등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급격한 사회 변화를 사실상 강제하는 규정이 삽입되면서 국론은 분열됐다. 급기야는 투표를 수개월 앞두고 시행된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찬성을 웃돌았다.

카를로스 살리나스 개헌거부시민위원회 대변인은 “보리치 정부가 내놓은 개헌안을 거부하는 것을 희망의 길로 본 다수의 칠레 국민들이 단결하는 모습을 봤다”며 “보리치 대통령 역시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고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안 부결로 집권 7개월 차에 접어든 보리치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개헌을 시작으로 사회 전반에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겠다는 게 보리치 대통령의 의지였던 만큼, 이번 개헌 투표를 보리치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로 봤다. 개혁에 대한 속도 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다만, 보리치 대통령이 문제가 된 일부 조항에 대한 수정 등을 거쳐 헌법 개정 추진을 재시도할 것이란 게 현지 언론의 대체적 분석이다. 앞서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전에 보리치 대통령은 만약에 개헌안이 부결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새로운 개헌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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