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급난 점진 완화·친환경차 인기 덕분
이달부터 한국산 전기차 가격 1000만원 인상
정부·재계, 美에 IRA 보완 요청…개정은 ‘난망’
현대차 아이오닉5. [현대차 제공] |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5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던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미국 판매량이 반도체 수급난이 다소 풀리면서 큰 폭의 반등세를 보였다. 그러나 당장 이달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되면서 판매량 회복에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 정부와 재계가 미국 정관계에 보완을 거듭 요구하고 있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가 당장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2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지난 8월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전년 대비 17.7%가 늘어난 13만5526대를 판매했다. 판매량은 지난 3월부터 반도체 수급 부족으로 이어진 감소세를 극복하고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각각 판매량이 13.5%, 22.4% 늘어난 현대차와 기아 모두 8월 판매량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다.
특히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가 전체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미국 시장에서 판매한 친환경차는 12만703대로 집계됐다. 벌써 지난해 판매량인 11만634대를 넘어섰다.
구체적으로 현대차와 기아의 친환경 차량 판매량은 각각 48%, 151%가 증가했다.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5%에 달한다. 이 가운데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판매량 회복세에도 현대차와 기아의 판매 전략에는 차질이 예상된다. 전기차를 중심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던 기존 방향성이 바이든 행정부와 미 의회가 통과시킨 IRA로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산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탓에 당장 아이오닉 5와 EV6, 코나 일렉트릭, 니로 EV 등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전기차가 사실상 가격 인상의 상황에 직면했다.
테슬라와 리비안, 쉐보레 볼트EV·볼트EUV 등 미국 브랜드가 판매하는 주요 전기차가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 사격을 받는 것과 대비된다. 한국산 전기차의 경쟁력 하락과 판매량 급감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아 EV6. [기아 제공] |
조지아 전기차 공장 투자 발표 직후 “실망시키지 않겠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약속만 철석같이 믿었던 현대차그룹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직접 미국을 방문해 현지 상황을 확인하고, 조지아 공장 조기 착공과 생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기 전까지 전기차 판매 및 마케팅 전략에 변화를 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 역시 잰걸음이다. 미국 정관계와 접촉해 한국산 전기차가 IRA 시행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안성일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을 필두로 한 정부 대표단은 지난달 말 미국을 방문해 미 무역대표부(USTR), 상무부, 재무부, 국무부 등 관련 부처를 찾아 상원 수석 전문위원에게 우려를 전달했다. 또 세액 공제 범위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로 확대해 줄 것을 주문했다. 오는 5~6일에는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DC를 방문해 관련 논의를 이어간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IRA가) 초기 단계인 전기차 시장 발전을 저해하고, 한미FTA 정신과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원칙에 맞지 않는다”면서 “한국의 미국 내 투자 역량을 저해할 수 있다”고 재고를 촉구했다. 전경련은 이 서한을 미국 관련 5개 부처와 의회에 송부했다. 미셸 박 스틸, 영 김 등 한국계 하원 의원과 조지아, 앨라배마 등 한국기업이 대규모로 투자를 한 주의 주지사들에게도 보냈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기차, 반도체, 광섬유, 기타 핵심 부품을 미국서 만들 것”이라며 IRA 시행을 주요 정치적 성과를 내세우고 있어 연내 관련법 개정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재계가 미국에 우려와 재고를 촉구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기아 입장에선 현지 마케팅을 강화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라며 “9월 이후 전기차 판매량 급감에 따른 판매량 하락이 현실화한다면 연간 실적 역시 기대치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why37@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