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g 1만원 하던 배추가 2만원 치솟아
시장 곳곳 낙찰 못받은 도매상인 탄식소리
추석 제수품 청과류도 작년보다 10% 상승
농업기술력 갖춘 산지농가 직매입방식 늘어
23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이정아 기자] |
지난 23일 새벽 4시, 전국의 농산물과 과일이 모이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청과 코너에서 만난 한 도매상인은 “이른 폭염, 늦장마가 겹치면서 배추 상태가 정말 안 좋다”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출하량을 한창 끌어올려야 할 시기에 정작 상품성 있는 배추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이렇다 보니 경매장에서는 낙찰을 받지 못한 50여명의 도매상인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이날 고랭지 배추(10kg·특1등) 경매가격은 최고 2만500원까지 올랐다. 1년 전만 해도 1만원을 넘지 않았던 낙찰가가 2배 넘게 뛴 것이다. 가락시장에서 24년간 채소류를 납품한 한 도매상인은 “평소 같으면 대형마트나 백화점 매대에 올리기 어려운 품질의 배추인데도 일단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게 걱정”이라며 “상태나 크기 등 품질차가 크다 보니 같은 배추라도 경매가가 1만5000원이나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과일은 농산물에 비해선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예년보다 맛이 좋지 않은 사과가 늘었다. 봄철 일교차가 심하지 않았을뿐더러, 장마 탓에 일조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수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멜론도 많아졌다. 올해 추석기간 전반적인 청과류 가격이 전년동기 대비 10%가량 올랐다는 게 경매 관계자의 설명이다.
23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이정아 기자] |
청과 도소매업을 운영하는 양시환 후르츠사계절 이사는 “최근에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비까지 오면서 경북 북부 중심으로 탄저병에 감염된 사과도 많이 보인다”라며 “앞으로 한 주가 추석 청과 물가를 가늠 짓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오전 8시, 사과 경매장은 평소보다 과열된 분위기였다. 경북 영천과 김천, 전북 장수와 무주 등에서 올라온 품질 좋은 사과를 낙찰받으려는 도매상인 15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다. 추석에 맞춰 수확하는 홍로 사과 물량이 떨어졌고, 이에 알이 굵고 빨갛게 익은 홍로 사과 경매가(10kg·특1등)는 6만5000원까지 올랐다. 전년 최고가(6만원) 보다도 9%가량 가격이 뛰었다.
우수한 품질의 과일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유통업체 바이어는 더 바빠졌고, 더 집요해졌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청과 바이어가 365일 가운데 경매가 있는 날마다 매번 새벽 가락시장에 나간다. 꼼꼼하게 경매 상품을 확인하고 직접 검수하기 위해서다.
이날 가락시장에서 만난 서원 현대백화점 청과 바이어는 시장 내 5개 청과법인의 6개 협력사를 바삐 오가며 과일의 빛깔이 먹음직스러운지, 알이 굵은지, 과즙이 풍부한지, 단맛과 신맛의 균형이 잘 맞는지 섬세하게 확인했다. 그는 포장 박스에 담긴 복숭아 낱개 무게가 일정한지 재확인 했고, 그 자리에서 멜론을 바로 썰어 맛본 뒤 당도선별기로 당도를 측정했다.
23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이정아 기자] |
서 바이어는 “30여년 넘게 쌓아온 중도매인, 경매사와의 네트워크가 탄탄해서 산지 정보를 빠르게 입수하고 있고 산지까지 뛰어가 소통도 하고 있다”라며 “새벽 가락시장 경매장에서 구입한 가장 좋은 품질의 과일이 전국 12개 지점(부산·대구·울산 등 4개 경우, 엄궁동 농산물시장에서 직접 소싱)에 당일 공급될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날 새벽 4시에 가락시장으로 출근한 서 바이어는 납품되는 과일 검수를 마친 뒤, 오전 7시께 산지로 이동했다.
한편 최근 들어서 유독 잦아진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유통업계 내부에서는 기술력을 갖춘 농가와 안정적으로 직매입 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35년간 현대백화점에 과일을 납품한 도매업자 탁송철 거상푸르넷 이사는 “농가 노후화로 인한 기술 격차로 농가마다 상품 품질이나 생산량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라며 “재배 기술이 과학적으로 갖춰져 이상기후 등에 구애 받지 않는 몇몇 농가의 인기가 특히 많다”고 말했다.
서 바이어도 “이제는 ‘이 지역에서는 이 과일이 대표적으로 맛있다’라고 특정할 수 없는 시대”라며 “농업 기술을 갖춘 농가를 중심으로 국내 과일 재배 수준이 전체적으로 상향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