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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화위 “형제복지원 사건,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폭로 35년만에 국가 첫 진실규명
사망자 105명 추가 확인…총 657명
정신과 약물 과다 투약…화학적 구속
보안사, 요원 침투 등 조직적 관리
관련기관, 사건 조직적 은폐·축소 정황
“국가 공식 사과 후 지원방안 마련해야”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이 알려진 이후 1987년 2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부랑인 수용보호 문제는 시설운영자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고 입장을 밝힌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료(왼쪽)와 1987년 3월 형제복지원 문제 관계기관 대책회의 문건 자료. 당시 대책회의에서는 청와대 비서관,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대검찰청, 치안본부(현 경찰청) 등 정부 주요인사가 참여해 형제복지원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부랑인 수용시설 ‘형제복지원’의 참혹한 인권유린 실태가 세상에 드러난 지 35년 만에 국가가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조사 결과 3만8000여 명이 이곳을 거쳐갔고, 그 중에 600명 이상이 숨졌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사범을 강제 수용해 군의 감시를 받게 한 사실도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진화위)는 24일 오전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진화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 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해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결론내렸다.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낸 사실은 크게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수용과정의 위법성 ▷운영과정의 인권침해 ▷의료문제·사망자 처리 의혹 ▷정부의 조직적 축소·은폐시도 등이다.

우선 무차별한 부랑인 단속과 강제수용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대해 진화위는 “법률유보·명확성·과잉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과 체계 정당성을 모두 위반했다”며 위헌·위법성을 지적했다.

명확한 피해 규모도 확인됐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3만8000여 명에 달했다. 1984년에는 최대 4355명이나 됐다. 사망자 수는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105명 더 많은 657명으로 확인됐다.

취약한 환경 등의 영향으로 수용자들의 사망률도 높았다. 1986년 기준 수용자의 결핵 사망률은 0.41%로, 당시 일반인(0.014%)과 비교했을 때 29.2배 높았다. 일반 사망률도 4.30%로, 일반인(0.318%)의 13.5배 수준이었다.

형제복지원이 수용자들에게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약해 ‘화학적 구속’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수용자 중 부적응자, 반항자에게 약물을 투입하고 정신요양원을 소위 ‘근신소대’로 활용한 것이다.

형제복지원이 1986년 한 해에 구입한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증세 완화제)은 총 25만정으로, 이는 342명이 1년간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당시 형제복지원 내 정신요양원 수용인원은 395명이었다.

또 진실화해위가 최초로 입수한 형제복지원 정신과 약물 구입 목록을 보면 정신분열증·양극성장애 치료제인 할로페리돌, 간질성 경련 치료제 디펠, 향정신성의약품인 바리움, 달마돔 등이 포함돼 있었다.

진화위가 당시 검찰 수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용자들의 강제노역 대가인 자립적금을 미지급하거나 착복한 사실도 밝혀냈다. 1986년 1인당 평균 예입액은 55만819원이지만, 1인당 평균 지급액은 20만4729원으로 34만원 넘는 차이가 났다.

정부와 군의 개입 정황도 확인됐다.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납북귀환어부 감시를 위해 보안사 요원을 위장 침투시키는 등 집중 관리했다. 형제복지원을 불순분자의 집단행동 가능성이 높은 집단으로 판단한 보안사는 이를 ‘갈채공작’으로 명명하고 복지원 측 서약을 받아 지속적인 관계체계를 구축했다.

또 국가보안법·국방경비법·반공법 위반자를 신원특이자로 구분해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하고 감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1987년 3월 형제복지원 폭로 직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 주재로 청와대,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검찰, 부산시 등 관계기관이 모여 형제복지원 대책회의를 했다는 보안사 문건이 최초로 공개되기도 했다.

진화위는 당시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에도 보건사회부가 부랑인 강제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밝혔다. 부산시, 경찰, 안기부 등 기관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하고, 피해자들을 회유하려는 정황도 포착했다고도 덧붙였다.

진화위는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 회복·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위해 적합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가가 각종 시설의 수용·운영과정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을 실시할 것과 국회가 올해 6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근식 진화위원장은 “1기 진화위에 3건의 시설 강제수용 신청이 접수됐으나, 당시에는 시설수용 문제를 ‘국가범죄’로 인지하지 못했다”며 “2기 진화위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 사건임을 종합적으로 규명했다”고 설명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진화위가 2020년 12월 출범 후 1호 사건으로 접수했으며, 지난해 5월 조사개시한 지 1년 3개월 만에 1차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번 진실규명은 전체 신청자 544명 가운데 지난해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추후 다른 신청자들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에 나설 계획이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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