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무역협정 위배 우려 표명

전기차 美 최종조립때만 보조금 등

‘내국민 대우’ 규정 위배 가능성

EU도 “WTO 규범과 상충” 반발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s Act)’에 대해 양자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등 통상규범에 위배할 수 있다는 점을 표명하면서 국제 무역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국이 수입하는 품목과 미국에서 제조한 국산품을 차별 대우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내국민 대우’규정에 위배되고 미국 생산자와 외국 생산자 차별은 WTO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12일 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워싱턴D.C 주재 상무관을 통해 미국의 IRA가 통상규범을 위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미 정부에 전달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도 인플레이션 감축법 중 전기차 세제혜택에 대한 의견서를 지난 10일 하원에 전달했다. IRA에는 배터리에 쓰이는 니켈 등 핵심 광물을 비(非) 중국산으로 대체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국가에서 생산한 원재료 비율이 2024년 기준 40%, 2027년 80% 이상일 경우에만 대당 7500달러인 전기차 보조금의 ‘절반’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나머지 절반은 북미에서 제조한 부품 비율이 50%를 넘어야 지급한다.

해당 법안이 하원을 통과할 경우 2024년부터 발효된다. 이 법안이 발효될 경우, 중국산 소재 비중이 큰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전기차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단서도 우리 기업에 불리하다.

산업부는 IRA에 대비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전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자회사인 SK온, 삼성SDI 및 현대차와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미 정부의 IRA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일단 한미 FTA 위배 소지가 있다는 게 산업부 판단이다. 한·미 FTA에 의하면 미국이 수입하는 품목과 미국에서 제조한 국산품을 차별 대우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내국민대우’ 규정이다. IRA는 북미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어 한국에서 제조·수출하는 완성차가 불이익을 받는 구조다. 이에 정부는 미국 측에 FTA에 따른 동등한 대우를 주장할 방침이다.

유렵연합도 IRA에 대해 WTO 규범과 상충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미리엄 가르시아 페러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IRA 관련 “해당 조처는 해외 자동차 회사들을 차별하는 것”이라며 “당연히 (미국의 방침이)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도 상충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법안에서 이런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 WTO 규범에 완전히 부합하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이 법안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의도의 일환으로 해석됐지만, 까다로운 요건 탓에 대부분 전기차의 경우 혜택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란 우려가 업계에서 나왔다. 미국 밖 완성차 업체들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서 이 법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높다”면서 “또한 강행시 WTO 제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내 완성차 업계의 피해 우려가 있는 만큼 통상 채널을 통해 미국에 FTA 위배 소지 등 우려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문숙·유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