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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찌·보테가가 ‘기록되지 않은 여성’을 기억하는 법 [언박싱]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한국은 케어링그룹이 기대하고 있는 시장입니다. ‘우먼 인 모션(Woman in Motion)’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여성을 조명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계획입니다.”

티에리 마티 케어링그룹 아태지역 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대표는 5일 서울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연 이유를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평생 보모로 일하며 무려 15만장에 이르는 사진을 찍었지만, 생전 그 누구에게도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던 마이어가 남긴 삶의 기록이 담긴 전시다.

구찌,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를 운영·총괄하는 케어링그룹이 우먼 인 모션의 일환으로 이번 전시를 단독 후원했다. 케어링그룹은 지난 2015년부터 문화예술계에 기여한 여성 아티스트의 공로를 조명하는 우먼 인 모션을 운영 중이다. 칸 영화제 공식 파트너사로 매년 영화계에 영감을 불어 넣는 여성 아티스트를 선정해 ‘우먼 인 모션상’과 ‘신인 재능상’도 시상하고 있다.

티에리 마티(오른쪽) 케어링그룹 아태지역 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대표와 디크로마 포토그래피 앤 모렝 디렉터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에델만 코리아 제공]

4일부터 11월 13일까지 서울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개최되는 이번 사진전은 지난해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 뮤지엄, 올해 2월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박물관에서 개최된 바 있다. 마티 케어링그룹 대표는 “영화, 음악, 무용, 미술, 애니메이션, 디자인, 사진 등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여성 예술인을 더 잘 알리고,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를 통해 조명되는 마이어는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빛을 보게 된 무명의 천재 사진사다. 그의 사진이 세상에 나온 데는 2007년 미국 시카고의 작은 경매장에서 아마추어 역사학자 존 말루프가 낙찰받은 한 상자가 있었다. 상자에는 인화되지 않은 필름 15만장이 들어 있었다. 이번 전시는 상자 속 14만장의 필름과 300여편의 영상을 비롯해 그의 소품을 분석해 3년간 준비됐다.

디크로마 포토그래피의 앤 모렝 디렉터는 이날 가이드 투어를 통해 “여성들은 자신이 이뤄낸 성과나 업적에 비해 그 내용이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며 “우리가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마이어도 그중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이정아 기자]

이를 보여주듯 그의 사진 속 주인공은 보여질 의무가 없는 사람들이다. 쉽게 잊혀질 것 같은 거리의 사람들, 어딘지 그늘이 있어 보이지만 말똥말똥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 아이들,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 사진에 담겼다.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존재를 각인하려고 한 마이어의 집념이 돋보이는 이유다.

마이어는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4세에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12살부터 일을 해야만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여러 가정을 오가며 40년간 보모로 살았다. 그리고 녹록치 않았던 그의 삶에 한 줄기 탈출구와 같았던 것이 롤라이플렉스 카메라였을 지도 모른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거리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 속에 숨겨진 삶의 소중함을 포착한 그의 따뜻한 시선, 그리고 정확한 셔터의 타이밍. 정식으로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던 마이어지만, 그의 사진들이 당대 거장들과 비견되는 이유다.

모렝 디렉터는 “마이어는 작업 후반기 엄청난 양의 신문을 수집하고, 신문 한 장 한 장 촬영하는 등 수집광 면이 더욱 두드러졌다”라며 “그가 자신의 시대를 기록하고자 노력한 ‘기자’였던 이유”라고 덧붙였다. 마이어는 자신의 초상화 사진도 찍었는데, 최소한의 요소로만 자신을 나타내고자 그림자를 활용했다. 모렝 디렉터는 “나를 지우려는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셀피를 남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별함은 일상의 깊이에서 나온다.” 모렝 디렉터는 빅토르 위고의 말로 이날 가이드 투어를 마무리했다. 그의 말처럼, 마이어가 남긴 멈춘 시간 속에 거리의 낭만이 여전히 숨쉬고 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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