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비상]
1분기 실질임금 3.2% 상승…5%대 물가 상승률에 못 미쳐
실질 구매력 급감...1분기 '먹는 돈'만 가처분 소득의 42.2%
양극화 심화...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342.7만원 '3년래 최대'
고물가에 최임위 논의도 '취약계층 vs 소상공인'의 명분 대결로
한국은행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추가 상승의 악순환“ 우려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내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
물가가 폭등하면서 ‘임금’을 둘러싼 우리 사회 갈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선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13년 9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치솟은 소비자물가지수를 명분으로 경영계는 동결을, 노동계는 대폭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추가 상승’의 악순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정작 지난 2년 동안 중소기업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9만원 오를 때 대기업 근로자 실질임금은 80만원 올라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고물가로 인한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노사·노정간 갈등은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임금은 ‘찔끔’, 물가는 ‘폭등’=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408만4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7.2% 올랐다. 액수로는 월 평균 27만3000원 올랐다. 다만 물가수준을 반영한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87만60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2%(12만2000원)오르는 데 그쳤다. 월급이 27만원 올랐지만 물가도 올라 실제로 오른 임금은 12만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실질임금은 명목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눈 뒤 100을 곱한 수치다.
물가 상승이 주요인이다. 1~3월까지 소비자물가는 3.8%나 올랐다. 지난해 전체 상승률(2.5%)을 한참 앞지른 수치다. 아직 임금엔 반영되지 않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4.8%, 5월 5.4% 올랐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8년 8월(5.6%) 이후 13년9개월 만에 가장 높다. 월급보다 물가 상승폭이 더 크다보니 올해 실질임금은 더 쪼그라들 수 밖에 없다. 이미 올해 1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인 1분위의 월평균 가처분소득(84만7039원) 중 식료품·외식비 비중은 42.2%에 달하고 있다.
이는 취약계층을 더욱 옥죄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총액 격차는 342만7000원으로 최근 3년 중 가장 컸다. 중소기업이 포진한 300인 미만 사업체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351만70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9%(16만5000원) 오른데 그친 반면 300인 이상 사업체는 694만4000원으로 13.2%(81만1000원) 늘었다. 금액으로는 64만6000원까지 벌어졌다.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4년 만이다.
▶최저임금위 노사 모두 “고물가”=고물가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을과 을’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3차 최임위 전원회의에서 노동계는 “고물가로 인해 감소한 저임금 취약계층 근로자들의 ‘생계비’”를 최저임금 인상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경영계도 “코로나19를 겪으며 고통을 극복해온 소상공인에겐 최저임금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향방이 물가에 달린 셈이다.
현재 노동계는 내년 최저임금으로 올해보다 29.4% 높은 1만1860원(월 247만9000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영계는 ‘동결’ 의견이 절대적이며 인상을 한다고 해도 ‘3% 미만’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상 최저임금 심의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양측이 제출한 최초요구안의 격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직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요구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각종 경로를 통해 드러난 양측의 간극은 최대 시간당 2700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오는 16일 열리는 최임위 4차 전원회의에서도 결국 고물가를 반영한 적정 생계비를 최저임금 결정의 주요인으로 삼아야 한다는 노동계의 요구가 협상 테이블의 주요 논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혼 단신 가구는 전체 가구 대비 9.8%, 인구 대비 3%대에 불과해 전체 임금 노동자를 대표하는 통계로 한계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다만 경영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구생계비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나라는 없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 뿐 아니라 향후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임금인상 압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고물가와 임금상승 추세가 겹칠 경우 물가와 임금이 계속 영향을 주고받으며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 하반기 이후 임금 상승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물가 상승→임금 상승→물가 추가 상승의 악순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