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 이온어스 대표. [사진=시너지영상팀] |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전기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갑니다.”
최근 유통 업계에선 ‘라스트 마일’이라는 개념이 화두다. 최종 소비자와의 접점에서 제공되는 마지막 서비스 과정을 말한다. 온라인에서 배송을 주문한 고객이 ‘이게 정말 배송이 되네?’ 혹은 ‘벌써 택배가 왔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이는 곧 훌륭한 라스트 마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말이다.
라스트 마일이라는 개념을 전력 시장에 도입한 기업이 있으니, 설립된 지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스타트업 이온어스다. 이온어스는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전기를 배송해준다. 기존에는 전기가 들어오는 건물과 연결돼야 비로소 전기를 쓸 수 있었지만, 이온어스는 바퀴가 달린 초대형 보조 배터리에 전기를 실어 보낸다.
콘서트 행사장 등에서 사용하던 디젤 발전기와도 다르다. 소음이나 냄새 걱정이 없고, 지구를 위한 ‘탄소 중립’도 가능하다. 이온어스의 창업자인 허은 대표를 직접 만나 전력 시장의 미래를 엿봤다.
[영상=시너지영상팀]
-이온어스의 솔루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에너지 모빌리티 서비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에는 모든 전력이 전선에 연결돼 공급됐잖아요. 하지만 전기차같은 배터리 기반 산업이 점점 커지고, 저장된 에너지에 대한 수요도 많아지면서, 이젠 전기도 수요에 맞춰 고객을 찾아가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만든 것이 ‘인디고(indego)’라는 이동형 에너지저장장치(ESS)입니다. 전선으로부터 독립한 전력(independent power)을 싣고 어디든 갈 수 있다(go)는 뜻을 담았죠. 인디고는 공사장이나 행사장에서 쓰이는 발전기뿐만 아니라 이동형 전기차 충전소 등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온어스가 개발한 이동형 ESS 제품 ‘인디고’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를 완속 충전하고 있는 모습. 현재 이온어스는 급속 충전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 [사진=시너지영상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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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선으로부터 독립한 전력은 기존에도 있었다. 경유 및 휘발유 발전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발전기는 이용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 예컨대, 비상 전력 공급을 위해 국내 도로 교량 및 터널에 설치된 7700여대(2019년 통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규모는 연간 140만t에 달한다. 인디고처럼 탄소 배출 우려에서 자유로운 ‘그린 발전기’는 기존 ‘그레이 발전기’로 대체될 수 있다.
-회사는 탄소 중립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기를 사용하면 탄소가 배출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애초에 전기를 생산할 때 탄소를 배출한다면, 엄밀히 말해 탄소 중립은 아니지 않나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사실 저희 배터리는 한국전력이 공급하는 전력을 통해 충전하고 있는데요. 태양광, 풍력뿐만 아니라 가스나 석탄으로 만든 전기까지 한 데 섞여 있으니, 1000㎾당 0.46t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이걸 그대로 고객에게 공급한다면 탄소 배출 ‘넷 제로(net zero)’와는 거리가 있겠죠.
그래서 저희는 기업 파트너들과 함께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했습니다. 여기서 확보한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와 탄소배출권을 활용해 저희 서비스를 넷 제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요. 조금 더 나아가 관련 규제가 풀리면, 미래에는 녹색 연료를 공급하는 사업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전기가 어디서 생산된 것인지 꼬리표를 달아 친환경 전기만 원하는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거죠.”
회사명에 포함된 ‘이온(aeon)’이라는 단어는 ‘영겁의 시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영겁의 시간을 살아낼 우리(us). 이온어스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친환경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왠지 이용자 입장에선 불편하거나 비쌀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 편리성 측면에서는 뛰어납니다. 콘서트 등 행사장이나 드라마 촬영장에는 늘 발전기 차량들이 옵니다. 관계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소음이나 냄새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더라고요. 멀리 떼어 놓으려면 또 수십m 케이블을 설치하는 번거로움이 있죠. 반면 인디고는 소음도 없고 악취도 없고 공간 활용도 자유롭습니다.
가격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기존 50㎾ 디젤 발전기의 경우 하루 종일 임대료가 보통 25만원 정도 하는데요, 여기에 기름값이 20만원 이상 추가로 나옵니다. 그런데 인디고같은 그린 발전기의 경우, 심야 시간대에 충전해뒀다고 했을 때 하루 전기값은 1만5000원이면 충분해요. 최종 소비자 입장에선 임대료가 비싸더라도 기름값을 아낄 수 있으니 기존과 비용 부담이 비슷하고, 임대 사업자는 기존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죠.”
-ESS는 화재 사고에 취약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인디고는 얼마나 안전한가요?
“제가 ESS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ESS는 한 곳에 얌전하게 설치해 놓고, 주변 제어 시스템을 통해 관리해요. 이걸 떼어다가 여기저기 이동시킨다고 하면 누구라도 화재 사고를 걱정할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미 배터리가 탑재돼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있는 게 뭘까 생각했고, 전기차를 떠올렸죠. 자동차용 배터리는 실제 도로를 달리고, 비도 맞고, 피치 못할 사고를 겪기도 하잖아요. 저희는 이런 모든 것들에 대비할 수 있도록 전기차 배터리 기준으로 인증을 준비하고 있어요. 일반 ESS보다는 훨씬 안전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기존 발전기 임대 시장을 대체했을 때 이온어스는 얼마나 많은 매출을 낼 수 있나요?
“국내 디젤 발전기 임대 시장만 해도 연간 2700억원 규모라고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약 30%는 저희가 가져가고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저희는 오는 4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지사를 설립할 예정인데요. 미국 내 대량 생산을 목표로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고요, 2025년 1조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허은 이온어스 대표. [사진=시너지영상팀] |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자신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여러 요인이 미국 내 이동 충전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키우고 있어요. 우선 기후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급박합니다. 텍사스에 한파가 올 줄 아무도 몰랐잖아요. 그 한파 때문에 발전기들이 안 돌아가고 전력 공급도 안 되고.. 갑자기 한파가 오면 연료관이 얼어버리니, 디젤 발전기도 소용없거든요. 한편으로는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도 기회 요인입니다. 우리나라는 영토가 좁기 때문에 대부분 10㎞ 반경 내에는 충전소가 있지만, 미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죠.
미국 내 성장을 자신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저희 회사에 투자한 기업들의 역량입니다. 현대코퍼레이션, 현대엠파트너스같은 경우 미국 내 지사가 있고 관련 조직들도 구체화돼 있죠. 함께 현지 시장을 예측하고 있는데,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중에서도 ‘착한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배터리를 어떻게 만들고, 폐배터리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지난 2019년에 모 자동차 제조사와 함께 전기차 폐배터리를 재사용해 구축한 친환경 충전소 사업에 참여했었는데요. 폐배터리 재사용이 경제성을 갖추려면 아직 5년 정도는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기술적으로 불안정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비는 해야겠죠. 지금 저희 인디고에 사용된 배터리는 전부 새 제품인데요. 저희도 배터리 순환 구조에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내후년 이후로는 제품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온어스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모듈을 이용해 배터리 팩을 개발 중이다. 스타트업으로서는 최초로 모빌리티 구동용 배터리 인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시너지영상팀] |
-최근 OB맥주에도 서비스를 공급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한 건가요?
“저희의 사업은 크게 인디고 제품과 RE100 컨설팅 두 개로 나뉘는데요. 지금까지 얘기한 게 인디고 제품에 대해서였다면, OB맥주에 공급한 것은 RE100 컨설팅 서비스입니다. RE100 달성을 위한 여러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서비스라고 보시면 돼요.
구체적으로는 광주, 청주, 이천에 있는 OB맥주 공장 지붕에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했습니다. OB맥주 입장에선 정수기 렌탈하듯 임대료를 내고 발전소를 빌린 뒤, 이 발전소로 친환경 전기를 생산해 쓰는 구조인데요. OB맥주가 사용하는 전력의 10% 이상을 자가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로 충당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밖에도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계획들을 논의 중이고요.”
이온어스는 지난해 말 영국 담배 회사인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 코리아와도 전략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제주 풍력 발전으로만 생산한 전기의 REC를 2000㎽ 규모로 조달했는데, 탄소중립용 REC로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였다는 게 허 대표의 설명이다.
“탄소 중립에 대해 기업들도 여러 고민이 있겠지만, 직접 생산한 전기로는 사용 전력의 30%를 채우는 것도 힘들 거예요. 그래서 민간 발전소에서 전력을 구매하거나, REC를 구매하거나, 한전 전기를 웃돈 주고 구매하는 등 여러 옵션을 고민해야 하죠. 물론 애초에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기본이고요. 이런 로드맵을 연차별로 수립하고, 그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수단을 마련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허 대표는 인류가 전기를 소비하는 기본 개념이 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존에는 되는대로 만들어 놓고 편할 때마다 소비하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론 어떤 전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미리 예측해 그만큼만 주문해 쓰는 방식이 일반화할 것이란 설명이다.
“건설 현장에 빗대 설명하곤 해요. 옛날 건설 현장에선 시멘트랑 모래, 자갈을 한 켠에 쌓아두고 콘크리트 작업이 필요할 때마다 섞어서 썼죠. 물량 관리가 안 되는 것은 물론 품질도 낮았을 거예요. 하지만 요즘엔 어떤가요. 시멘트가 얼마나 필요한지 예측에 기반해 주문을 하잖아요. 품질도 균일하죠. 전기도 마찬가지예요. 시대가 바뀌어서, 이젠 모든 기업이 탄소 발자국을 검증해야 하는 때가 됐습니다.”
hum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