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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산하면 살인죄 적용...성폭행 임신도 낙태 불허
유산 후 고의 낙태로 몰려 7∼13년 수감됐다가 풀려난 엘살바도르 여성들 [AFP연합]

[헤럴드경제=한희라 기자]#17살의 임신부였던 엘살바도르의 케니아는 배에 이상을 느끼고 구급 전화를 걸었다. 오지 않는 구급차를 기다리다 의식을 잃었고, 깨어나 보니 경찰들에 둘러싸인 채 공립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태아를 잃은 케니아는 고의로 임신을 중단한 살인범으로 물려 수감됐다. 9년의 세월이 흐른 올해 1월 26살에야 풀려났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에서는 케니아를 포함해 유산 후 살인죄를 쓰고 복역했다가 최근 석방된 여성 4명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케니아는 “부당한 일이었다. 난 젊음도, 가족도 잃었고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고 말했다.

20∼30대인 4명의 여성은 각각 7∼13년씩, 4명 합쳐 40년 넘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중미 엘살바도르는 니카라과, 온두라스, 도미니카공화국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게 낙태가 금지된 국가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이어도, 임신부의 목숨이 위험한 경우에도 절대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낙태죄 처벌은 최고 8년형이지만, 살인 혐의로 가중 처벌돼 30∼50년형까지 선고받기도 한다.

낙태의 의사 없이 불의의 사고로 태아를 잃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엘살바도르에선 지난 20년간 181명의 여성이 고의로 임신을 중단한 혐의로 처벌받았으며, 엘살바도르 안팎 여성인권단체 등의 지속적인 요구 속에 2009년 이후 62명이 석방됐다.

처벌 받은 여성 중엔 농촌 지역 빈곤층 여성들이 특히 많다.

13년을 감옥에서 보낸 에벨린(34)은 “나도 여기 다른 친구들처럼 죄가 없다. 불합리한 법이 가난한 여자라는 이유로 우릴 죄인으로 만들었다”고 호소했다.

유산 후 10년을 갇혀 지내며 혼자 키우던 아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던 엘시(28)는 "이제 내 아들이 자라는 것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케니아는 “영어 공부도 계속하고 있고 가족을 돕기 위해 미용학 공부도 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여성들은 여전히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엘살바도르 여성 12명의 석방을 정부에 호소했다.

남미 콜롬비아 법원이 지난 21일 임신 24주 이전의 낙태를 허용하기로 하는 등 가톨릭 전통이 강한 중남미에서도 점차 낙태 허용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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