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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토론 규칙 잘 지켜야 헌법도 준수한다

부정출발, 진로방해, 신호위반, 끼어들기, 꼬리물기 등이 예사였다. 고성과 조롱을 넘나들며 발뺌과 우기기도 있었다. ‘심판’의 잇단 주의에도 반칙은 계속됐다. 도로주행이나 올림픽 쇼트트랙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이끌고 나갈 대통령 후보들이 지난 21일 MBC 스튜디오에서 모여 펼친 TV토론 자리다.

초등학생만 돼도 이해할 만한 규칙이었다. 공통질문에 대한 답변은 1분, ‘시간총량제’ 토론은 각 후보당 총 6분, 손들면 사회자가 지목한 순서대로 발언하기. ‘주도권 토론’은 후보별로 9분. 주도권을 가진 후보는 반드시 2명 이상의 다른 후보자에 묻고, 질문당 30초 이상의 답변시간 주기.

그러나 시간총량제 토론에서는 발언권을 가진 후보가 다른 후보한테 질문을 해 서로 공방이 오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지 않고도 무심결에 질문과 답변을 이어가는 사례가 속출했다.

주도권 토론도 문제였다. 어떤 후보는 질문을 해놓고 상대에게 최소 30초의 답변시간을 주지 않아 다른 후보의 항의나 사회자의 주의를 받았다. 질문을 해놓고 답변은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후보도 있었다. 정견을 밝히는 자리에서 마치 죄인 취조하듯 “예, 아니오로만 답하라”거나 학생 대하듯 “아느냐 모르느냐”고 묻는 모습도 토론 때마다 반복된다.

정치지도자로서의 품위를 훼손한 발언들도 있었다. 스포츠로 치자면 ‘스포츠맨답지 않은 행위(Unsportsmanlike conduct)’다. ‘스포츠맨답지 않은 행위’는 대부분의 종목에서 벌칙이 매우 중한 ‘파울’이다. ‘정치지도자답지 않은 행위’ 역시 큰 반칙이라는 얘기다. 상대의 말은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거나 “들어봐야 소용 없다”는 식의 언행은 대선 후보 간 TV토론에서 부적합하다. 심지어 “후보(님)”라는 공식 호칭 대신 상대를 “본인”이라고 하거나 “회피하다” 정도면 될 말을 “내빼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휘력이나 언어습관의 문제만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파울’이다.

왜냐하면 TV토론, 특히 ‘주요 후보’ 토론회에 나온 후보들은 법이 규정한 일정한 ‘대표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소속당의 역사나 각 후보자들의 경력, 최소한 현재 의회 점유율이나 여론조사 지지율만큼의 ‘대표성’이 인정된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상대 후보 개인이 이쁘고 미더워서 존중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국민을 존중하라는 것이 TV토론뿐 아니라 모든 선거, 모든 정치적 경쟁의 기본적인 전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근 일부 정치인이 온라인·인터넷에서의 표현을 거르지 않고 갖다쓰며 경쟁자들을 조롱·비난하는 행위는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혐오와 증오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다른 후보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후보가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할 리 없다. 다른 후보의 말을 왜곡하는 후보가 민의를 제대로 받아 안을 수 없다. 다른 후보에게 윽박지르는 후보가 협력과 통합의 정치를 할 리 없다. 토론 규칙도 제대로 못 지키는 후보가 헌법을 준수하는 대통령이 될 리 없다. 남은 TV토론을 ‘매의 눈’으로 지켜볼 일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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