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패스 첫날, 대형마트 입구 곳곳 실랑이
휴대전화 익숙치 않은 노인들에겐 벽
QR 인증기기 보고 발길 돌리는 백신 미접종자
접종률 1% 임산부는 아예 찾지 않아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려요, QR(전자출입명부)코드 인증하셔야 해요, 부탁드립니다.”
10일 오후 3시 50분 이마트 용산점 입구, 열댓 명 정도 줄지어 서 있는 손님들 사이에서 숨이 넘어갈 듯한 다급한 보안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QR코드 인증 기기를 그대로 지나치려고 하자 보안직원이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QR코드 인증 안 하시면 못 들어 가세요.”
마트 입구에 멈춰 선 노인 부부는 주변을 의식한 듯 보안직원에게 속삭이며 “백신 주사를 맞았다”고 연신 말했다. 보안직원은 QR코드 인증을 하거나, 접종 증명서라도 보여 달라고 재차 요청했지만 노인 부부는 QR코드가 무엇인지 모르는 듯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접종 증명서를 안 가져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내 곳곳에서 “QR 인증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는 토로가 쏟아졌다. 장내가 술렁이자 어떤 이가 “오늘 한 번만 그냥 좀 들어갑시다”라고 소리를 쳤다. 직원들에게 대뜸 휴대전화를 건네며 “대신 접종기록 좀 불러와 달라”고 부탁하는 이도 있었고, “여기가 공산국가냐”라며 버럭 화내는 이도 있었다. 보안직원은 고객들의 눈치를 보며 모든 말끝마다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면적 3000㎡ 이상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가 적용된 첫날 매장 입구에선 손님과 직원들 사이에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접종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느라 입구 줄은 금세 길어졌고, 입장하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평소 같았으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도 2~3분이면 충분이 입장할 수 있던 곳이다.
특히 휴대전화 사용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에게 방역패스의 벽은 높았다. 매장 입구에는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30분 넘게 휴대전화를 붙들고 접종 증명서와 씨름하는 어르신들이 유독 많았다.
이날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찾은 박모(66) 씨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도움을 받으며 10여 분을 씨름했지만 끝내 접종기록을 불러오지 못했다. 별수가 없자 그는 “다음 주부터는 계도기간도 끝이라는데 이젠 마트는 못 오는 거지, 뭐”라며 씁쓸해했다. “마트에 오기 전에 집에서 ‘QR코드 찍는 법’을 검색해서 따라해봤지만 안 된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계도기간은 백신 미접종자들이 대형마트에서 쇼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17일부터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면 대형마트에 들어설 수 없다. 건강상 이유로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50대 박모 씨는 “건강 문제 때문에 백신을 못 맞았는데 마트에 갈 때마다 PCR 검사를 받기도 부담스럽다”며 “조용히 장만 보고 돌아가려는데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정 끝에 마트에 들어선 그는 라면부터 통조림, 고기 등을 왕창 구매했다.
대형마트보다는 연령대가 낮은 고객이 더 찾는 백화점은 입구가 비교적 덜 붐볐다. 그러나 방역패스가 적용되는지 모르고 발길을 돌린 이는 더 많아 보였다. 이날 5시10분께 더현대 서울을 찾은 김모(27) 씨는 1층 입구 앞에서 주춤하더니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그는 “1차 백신을 맞고 몸이 좋지 않아서 2차를 맞을 수 없었다”라며 “범죄자도 아닌데 자꾸 위축된다”고 했다. 이어 또 다른 20대 손님도 백화점 입구에서 QR코드 인증 기기를 보고 잠시 서성이더니 안내직원에게 찾아가 “백신 접종을 안 했는데 오늘은 들어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백화점 6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약속이 있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백화점 5층에 위치한 아동·유아 매장은 한산했다. 방역패스가 백화점에도 적용되면서 임산부를 비롯해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백화점을 찾지 않아서다. 유아복을 파는 매장의 40대 직원은 “임산부들이 한 번 매장에 오면 아기 옷을 굉장히 많이 사간다”라며 “그런데 오늘은 선물을 사러 오는 젊은 손님 서너 명 말고는 방문하는 손님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1·2차 백신 접종을 마친 임산부는 1%도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