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도입 후 통과단지 4곳 그쳐
기준완화 요구에 정부 반대 견지
시장선 대선 이후 정책변화 기대
내년 이후로 검토 연기 단지 속출
올해 서울 내 재건축 안전진단 적정성 검토를 통과한 단지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건축 가능 판정을 받은 곳은 1차 안전진단에서 최하 등급인 E 등급을 받은 여의도 목화 아파트가 유일했다. 서울시가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재건축 활성화에 나섰지만 안전진단의 높은 문턱에 막혀 재건축 사업 초기부터 발목이 잡히고 있다는 지적이 다.
서울시의 안전진단 기준 완화 요구에도 정부가 완강한 반대 의견을 견지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 측이 나란히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어 대선을 기점으로 전향적인 정책 전환이 이뤄질 지 주목된다.
13일 서울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에 따르면 올해 적정성 검토를 신청한 서울의 재건축 추진 단지는 총 14곳으로 이들 중 통과 의견을 받아든 단지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양천구 목동11단지와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 노원구 태릉우성, 광진구 광장극동은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했고 나머지 단지는 현재 검토를 진행 중이다. 다만 양천구 목동7단지·신월시영 등 일부 단지의 경우 검토기관으로부터 보완 보고서를 요구받은 뒤, 제출하지 않아 사실상 검토가 보류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은 통상 예비안전진단(현지조사)과 1차 정밀안전진단, 2차 적정성 검토 순으로 진행된다. 정밀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으면 즉각 재건축이 확정되나 조건부 재건축인 D등급이 나오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나 국토안전관리원의 적정성 검토를 거쳐 최종 통과 여부를 가린다. A~C등급은 유지·보수다.
적정성 검토는 2018년 3월 도입됐는데 그 이후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단지는 손에 꼽을 정도다. 1차 안전진단에서 E등급을 받은 영등포구 여의도목화를 제외하면 서초구 방배삼호, 마포구 성산시영, 양천구 목동6단지, 도봉구 도봉삼환 등 4곳만 적정성 검토를 통과했다. 2015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3년간 서울에서 총 56개 단지가 안전진단을 통과해 재건축 판정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이는 당시 안전진단 기준을 개선하면서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20%에서 50%로 강화한 영향이 크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구조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면 주거환경이 극히 열악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재건축 판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재건축 추진 단지가 1차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고 적정성 검토를 거치고 있는데 공공기관에서 심사를 까다롭게 진행하고 있어 고배를 마시기 일쑤다. 태릉우성의 경우 지난해 10월 1차 안전진단에서 48.98점(D등급)을 받았으나 올해 7월 적정성 검토에서 10점 이상 높은 60.07점을 받아들며 탈락했다. 같은 매뉴얼에 따라 심사를 진행하고도 결과는 상이했다. 적정성 검토가 그만큼 까다롭게 이뤄진다는 의미로 읽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정성 검토를 미루는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는 연내 추진하려던 적정성 검토를 내년으로 연기했고 송파구 풍납미성, 강동구 명일우성 등도 신청을 보류했다. 현행 기준으로는 안전진단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대선 이후의 정책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포석이다. 앞서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취임 직후 안전진단 기준 완화를 정부에 공식 요청했으나 정부는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등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시장에선 대선 이후 안전진단 제도 개선 가능성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야당이 안전진단을 포함한 재건축 관련 규제 완화를 내년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 여당 내에서도 안전진단 기준 재검토 의견이 나오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이 사유재산권과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은 물론 주택공급 축소와 그에 따른 시장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만 주택시장 자극을 최소화할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서울시는 신규주택 공급의 대부분이 정비사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재건축의 신규 진입이 막혀있는 현 상황은 중장기적으로 주택공급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주택공급 확대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은희 기자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