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하이브리드 메타버스 콘텐츠
VR·헤드셋·온도촉감장치 몰입감 극대화
英·美·中 등 해외 영화제 3관왕 싹쓸이
본지 유동현 기자가 메타버스 기반 허수아비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아트엔 테크놀로지랩 제공] |
떨어지는 눈에 손을 갖다 대자 손등이 시리다. 들판이 무지개색으로 물들자 향긋한 꽃내음이 풍긴다. 허수아비가 작별을 고하며 포옹해줄 땐 어루만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현실처럼 생생한 감각이 느껴지는 이곳은 가상공간이다. 최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체험한 실감형 콘텐츠 ‘허수아비’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의미했다.
허수아비는 국내 최초 하이브리드 메타버스 콘텐츠로 가상현실(VR)기기와 헤드셋, 온도 촉감장치 착용을 통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관객들이 가상세계에서 허수아비와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가운데 극중 캐릭터와 교감하는 전개방식이다. 허수아비를 연출한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아트엔 테크놀로지 랩(Lab) 소장은 “20분 길이의 짧은 극이 끝난 뒤 영화제 관람객의 30%가 눈물을 보였다. 메타버스의 힘은 상호작용을 이끌어 내는 데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 독립영화축제 ‘선댄스영화제’에서 뉴프런티어 엑시비션(Exhibitions) 부문에 공식 초정돼 호평을 받았다. 체험 기반 콘텐츠라는 입소문을 타고 영화제 마지막 날에 인파가 몰려들었다. VR(가상현실) 커뮤니티에 오르내리며 VR 마니아들로부터 화제가 되면서다.
이 소장에 따르면 메타버스와 공연을 접목 시도하는 팀은 3, 4곳 정도다. 그중 허수아비는 단연 주목을 받고 있다. 포브스지 등 해외 언론으로부터 “가장 생생한 디지털 체험 중의 하나”, “시대를 앞서간 작품” 등 평을 받고 영국 레인댄스 영화제 최우수 실감미디어 상, 콜럼비아 대학 DSL의 스토리텔링 혁신상, 북경 샌드박스 페스티벌 최우수 기술 혁신상 등 해외 영화제 3관왕을 수상했다.
원동력은 ‘체험 극대화’다. 가령 극중 배경이 눈, 화산으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온도 촉감장치가 반응해 온도 변화를 나타낸다. 그는 “메타버스가 현실을 대체하는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시각 뿐 아닌 오감 체험형 경험이 중요하다”며 “본 공연에서는 향기,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몰입하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연 후기에는 “짧게 사귀었던 친구(허수아비)와 헤어지는 느낌에 슬펐다”며 짧은 시간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메타버스의 힘이 체험을 통한 ‘상호작용’에 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기존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이를 구현하기에 한계가 있다. 그는 “제페토나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등 2D 스크린과 모바일 기반 메타버스로는 몰입감이나 현존감이 부족해 현실과 같은 경험을 만들 수 없다”며 “특히 현실세계에서 사람 간 커뮤니케이션에 필수적인 6축 기반의 실시간 상호작용이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6축 기반이란 실제 사람이 움직이듯 전·후·좌·우·위·아래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아직 국내에는 6축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이 흔하지 않다. SK텔레콤과 LG의 모바일 메타버스 플랫폼은 3축 기반, 제페토나 로블록스 등은 6축이지만 모바일 기반으로 구현돼 현실성 개선과제로 꼽힌다. 이 소장은 “(허수아비는)현재 시점에서 메타버스 가능성과 한계를 알아볼 수 있는 최적의 체험”이라 설명했다.
이 소장이 소속된 한예종 아트엔 테크놀로지센터는 실연 배우를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 전세계 유저들이 본 공연을 체험할 수 있는 AI 메타버스 공연을 개발 중이다. 포항공대 인공지능, 햅틱, 컴퓨터 비전팀이 공동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소장은 메타버스 개념이 남용되는 현상도 꼬집었다. 2D기반 전시 또는 가상공간을 두고 모두 메타버스라고 명칭하지만 ‘실질적 체험’은 결여됐다는 것이다. 그는 마크 주커버그의 말을 인용하며 “메타버스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체험해보는 것”이라며 “가상세계에서 5감형 체험이 가능한 곳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유동현 기자
dingd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