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기 위한 금융규제로

부동산 정책 실패 뒷수습책

풍선효과·신용대출 급증 등

누르면 오르고 조이면 불고

총량관리·금리조절 바람직

부동산 닮아가는 대출 ‘규제의 역설’

“한 채만 가지라구요? 일단 한 채라도 제대로 사야겠네요”

문재인 정부 초대 국토부장관이던 김현미 장관이 “살지 않는 집은 파시라”고 엄포를 놓았을 때의 시장 반응이다. 이른바 ‘똘똘한 한채’ 열풍이다. 지방 주택을 팔고 서울과 수도권 집을 사려는 수요가 폭발했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정작 서울과 수도권에 살 집이 필요한 이들의 부담만 엄청나게 커졌다.

대출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관련기사 3·12면

“대출 못 받게 한다면서요. 일단 받을 수 있는 데까지 받아보려고요”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가계부채 증가율을 연 8.2%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5.9%), 2019년 (4.1%)로 총량 관리에 성공했으나, 지난해부터 ‘패닉바잉’에 따른 집값 상승세로 올해 증가율이 급증했다. 올 4월 가계부채 증가율을 5~6%로 낮추겠다고 밝혔으나, 지난달 기준 가계부채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0.0%로 두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관리의 필요성엔 공감하나 방법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출이 워낙 삐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는 바른 방향이나, 이를 금융기관에서 일괄적으로 금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대출은 받는 이의 신용과 소득을 평가해 이뤄져야 하고 총량 관리는 기준금리 조정을 통해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간 이뤄진 대책이 부동산 정책 실패의 뒷수습 격으로 이뤄지면서, 오히려 대출 가수요를 끌어당기는 풍선효과와 신용대출 등 단기 대출 확대 등 질적 훼손을 가져왔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 흐름을 보면 이 같은 설명은 더욱 힘을 얻는다. 정부는 2019년말 12·16 대책을 통해 투기과열지역 내 15억원 초과 주택의 주담대를 원천 금하고, 규제지역의 9억원 이상 주택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40%로 제한하는 강력한 대출규제 대책을 내놓았다. 집값을 잡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지만, 시장엔 역효과만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에만 규제를 피해 미리 받으려는 주담대가 13조원이 늘어난다.

이후 부동산 시장 진입이 막히고 주식시장이 활성화되자, 자산가격 상승에 소외되지 않으려는 20~30대 젊은 수요가 신용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의 ‘국가별 총부채 및 부문별 부채의 변화추이와 비교’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주담대를 제외한 기타(신용) 대출은 국내총생산 대비 51.3%까지 치솟았다. 주요 선진국인 독일(14.3%), 스페인(15.3%), 프랑스(16.3%) 등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다.

무엇보다 두더지 잡기 식으로 이뤄진 부동산 대책처럼, 대출 증가 시 억누르겠다는 ‘공포 신호’가 반복되면서, 대출 가수요가 빠르게 움직이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실제 지난 13일 금융당국이 신용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대출 한도를 대출자의 연봉으로 제한하겠다고 하자,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시중은행(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 신규로 개설된 마이너스통장 건수가 5000여건으로 크게 늘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대출 총량은 금리 인상으로 조절해야 하는 부분이고, 금융당국은 가계대출로 인한 금융기관 자산건전성 등에만 개입하는 게 맞다”며 “특히 (대출을 중단한) 주담대의 경우 개별 은행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잘못된 수단일 뿐 아니라 부동산 정책 실패를 유동성 조절로 막으려고 하는 문제 의식의 발로라면 더욱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성연진·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