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發 악재에 썰물처럼 빠져나간 외인 자금
올해 역대급 순매수도 증시 지탱하던 개미도 힘빠져
[헤럴드경제=박이담 기자] 연초 이후 줄곧 강세를 이어오며 증시의 레벨업에 성공했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쏟아졌던 한국 증시가 최근 급락세 속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델다변이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이슈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증시까지 휘청거리자 코스피가 대외 변수에 취약했던 과거의 구조적 한계를 재현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 증시가 달라졌다는 믿음에 역대급 매수에 나섰던 동학 개미들은 사면초가에 놓인 모습이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코스피의 12개월 선행주가수익비율(PER)이 10.59배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급등 속에서도 15.73배까지 상승했었지만 최근 급락세 속에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말 기록했던 11.8배를 밑도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은 대외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과거 한국 증시의 흐름과 동일하다. 미국의 소비, 중국의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는 두 경제 대국의 경제 상황에 휘둘리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 왔다. 실제 코스피의 하락은 두 나라의 시장 하락폭 보다 크다. 미국 다우산업 지수는 이달 16일 3만5631.19포인트를 기록하며 최고점을 찍은 이후 최근 4거래일 중 3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주춤하고 있다. 중국 증시는 분위기가 더욱 암울하다. 상해종합 지수는 최근 3개월 최고점(3629.29)에 비해 약 6% 하락했다.
이에 비해 코스피의 하락폭은 골이 더 깊었다. 코스피는 지난 6월25일 3300을 돌파한 이후 최근 3100선까지 무너지며 두달여만에 7% 이상 하락세를 보였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테이퍼링 리스크가 부각되며 국내 시장의 유동성 축소 우려가 커진 데다 중국이 16일 발표한 주요 경제지표가 부진하면서 국내 증시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고 진단했다.
이에 동학개미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올해 주식 투자 열풍 속에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을 꾸준히 사들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올해 코스피 시장에서 약 70조원, 코스닥에서 약 10조원을 순매수했다. 지난해 역대 최대 순매수 기록을 8개월만에 경신했다.
하지만 최근 증시 급락 속에서 입은 내상이 만만치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반대매매 규모는 42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07년 4월 24일(426억원) 이후 약 14년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반대매매는 개인이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려 주식을 산 후에 주가가 급락하거나 정해진 만기 내에 갚지 못하면 증권사가 강제로 해당 주식을 처분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금융 정책도 개미들의 투심을 얼어붙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주 정부가 가계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추가 자금을 구하기 힘든 개인 투자자들은 보유 주식을 매도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동안 지칠 줄 몰랐던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도 예전만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허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 업황 우려와 중국 산업 규제 이슈로 외국인 자금 이탈이 계속되는 데다 개인투자자까지 내상을 입으면서 수급 공백이 이어져 증시 상황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현재 국내 증시 주가가 지나지체 저평가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구 연구원은 “중국의 10월 국경절 특수와 6차전체회의 통해 정책 선회 여지가 있고 미국발 테이퍼링 노이즈도 3분기를 넘어서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펀더멘털 바닥 수준인 코스피3100선 이하 구간에선 저점매수가 유리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parkida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