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업계 “키워봤자 돈을 벌 수도 없는 나무…왜 심었나 이해 안 돼”
토지보상 행정사 “돈 안 되는 나무도, 토지 보상 시 이식비로 값 쳐줘”
상품성 떨어지는 값싼 나무를 대량 식재…이식비 ‘뻥튀기 투기’ 의혹
용버들 심은 토지 소유주들, 모두 LH 과천주암 보상 담당
과천주암 소속 LH직원 1000㎡ 크기로 여러 지분 보유…“투기 의혹”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제기한 토지 중 일부 모습. 경기 시흥시 과림동 17X-A와 17X-B(6735㎡ 규모)에 용처럼 꼬인 모양의 용버들(왼쪽)이 심겨 있다. 또 다른 땅인 시흥시 무지내동 3XX(5905㎡ 규모)에도 용버들이 식재돼 있다. [김지헌 기자] |
[헤럴드경제(시흥)=김지헌 기자] 과천주암지구 토지 보상을 담당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끼리 토지 매입 이후 상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관상수인 용버들을 심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상품성이 없는 관상수를 대량으로 심었다는 것이 이들의 투기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이 나온다.
8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의혹을 처음 제기한 토지 2만3028㎡(약 6966평) 중 54%에 해당하는 약 1만2640㎡(약 3823평) 면적에 대해 LH 직원들은 관상수(눈으로 보는 만족을 위해 심는 나무)로 분류되는 용버들(용처럼 줄기가 꼬여 있는 모습으로 생긴 버드나뭇과 나무)을 심었다. 30㎝ 간격으로 매우 빽빽하게 심었다.
또 다른 관상수인 에메랄드그린(측백나무의 한 종류로, 인기가 많은 품종)도 재배되고 있었지만 이는 전체 면적 중 약 20% 수준인 5025㎡(약 1520평)에 불과하다. 일부 토지에서는 소량으로 관상수의 일종인 산수유나무도 재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원예업계에서는 “용버들 대량 재배가 의아하다”고 지적한다. 용버들은 키워 팔아봤자 돈이 안 되는 관상수이기 때문이다. 경기 과천시에서 대규모 원예농업을 하는 A씨는 “땅에서 작물을 재배할 때 누구나 ‘돈이 되는 작물’을 재배하고 싶어한다”며 “용버들은 관상수로, 상품성이 전혀 없어 초보 농사꾼에게는 재배를 권하지도 않는 나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원예사업가 B씨 역시 “용버들은 꽃꽂이 용도로 매우 싼 가격에 거래될 뿐, 사실 관상수로 돈을 주고 거래되지 않는다”며 “돈이 안 돼, 살 때도 매우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나무를 왜 이렇게 많이 심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상품성 없는 수목’을 이렇게 많이 심었다는 것 자체가 보상구조를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보상 투기’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권 LH 토지 보상 업무를 주로 하는 상록행정사사무소의 김영원 대표는 “신도시 개발 등으로 토지 보상을 할 때는 나무 수를 고려해 이식비(나무를 파서 운반하고 다시 심는 데 드는 비용)만 지불하므로, 수종보다는 수량과 재배면적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토지 보상 규정상으로는 나무 가치와 이식비 중 낮은 가격으로 주인에게 보상이 돼야 한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나무 가치가 매우 낮으면 관행적으로 이식비 보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1000원짜리 묘목을 1년만 심어 길러도, 이를 옮기는 이식비 보상은 묘목 가치의 10∼20배가 될 수 있다.
김 대표는 “전체 개발비 차원에서 이식비 비중이 크지 않은 데다 이식비로 보상해야 개발 시 주민과 원만하게 합의할 수 있다”며 “이식비를 받아 수익을 낸 업자는 여전히 나무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값싸게 조경업자 등에게 나무를 팔아 추가 수익 역시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을 제기한 토지 중 일부 모습. 경기 시흥시 무지내동 3XX의 일부 토지에 관상수 일종인 산수유나무(왼쪽)가 심겨 있다. 시흥시 과림동 6XX(5025㎡ 규모)에는 관상수 일종인 에메랄드그린이 식재돼 있다. [김지헌 기자] |
상품성이 떨어지는 용버들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직원들은 모두 ‘과천주암 보상 업무’ 담당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LH 과천의왕사업단에서 과천주암 보상 업무를 담당하던 강모 씨는 다른 3명과 함께 2018년 6월 27일 경기 시흥시 무지내동 3XX 땅을 샀다. 인근 한 주민은 “이들은 땅을 사서 처음에는 고구마·상추 등을 재배했다”며 “그러나 풀이 많이 나오고 관리하기 어려워지자 관리하지 않아도 혼자 잘 크는 용버들과 산수유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년 뒤인 2019년 6월 27일 같은 과천주암 보상 업무를 하는 또 다른 직원인 정모 씨가 다른 LH 직원들과 시흥시 과림동 17X-A와 17X-B 토지를 사들였다. 이들은 여기에 또다시 용버들을 심었다. 앞서 농사에 실패하고 용버들을 심은 강씨가 정씨에게 조언을 해줬을 가능성이 추정되는 대목이다.
LH 직원 가족이 보유한 또 다른 과림동 토지 17X-C는 면적이 4042㎡(약 1223평)로, 땅에 검은 비닐이 덮여 있다. 검은 비닐을 덮으면 풀을 관리하기 수월해진다. 이 역시 관상수를 재배하기 위한 예비 작업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아울러 강씨는 자신이 1000㎡(약 302평) 이상 땅을 보유한 사실을 숨기려 한 정황도 발견된다. 강씨는 무지내동 3XX 땅에 대해 1000㎡에 약간 못 미치는 984㎡만큼만 보유하고 있다. 다른 과림동 땅에선 502㎡를 보유해 총 1486㎡를 소유하고 있다. 강씨의 부인도 지번이 다른 토지를 1000㎡ 미만씩 보유해, 실질적으로는 1000㎡ 이상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광명·시흥지구에서 토지 보상 업무를 하는 이광수 행정사는 “수도권에서는 지번이 서로 달라도 사업지구 내에 합쳐서 1000㎡ 이상만 되면 ‘협의양도인택지’를 받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쉽게 말해 들어서는 신도시에 예쁜 개인주택을 지을 수 있고, 이 대지와 주택의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시행자가 어디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아파트분양권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헤럴드경제는 강씨·정씨 등 LH 직원들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들이 직위 해제 상태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ra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