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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과학칼럼] 희망의 주사

“2020년의 연구 성과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했고, 기록적인 속도로 개발과 실험을 거쳐 탄생한 코로나19 백신이다.”

미국과학진흥협회가 발간하는 저널 ‘사이언스(Science)’는 최신호에서 ‘희망의 주사(Shots of Hope)’라는 제목 아래 2020년을 대표할 과학 성과로 코로나 백신을 꼽으며, 주사기를 타고 날아가는 과학자들의 그림을 표지로 실었다. 편집부에서는 과학자들이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백신 연구에 동원됐고 기록적으로 짧은 시간에 효과적인 백신이 나와 궁지에 몰린 세계에 새로운 희망을 줬다고 설명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던 전염병의 확산은 ‘의사과학자’에 대한 수요와 관심으로 이어졌다. 다소 친숙하지 않은 용어지만 의사과학자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면허 소지자로, 임상과 함께 과학기술·의학 융합 연구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수행하는 의사를 뜻한다.

사실 바이오·헬스산업의 시장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추세였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늘면서 자연히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코로나19의 등장은 바이오·헬스산업 중에서도 제약과 바이오, 체외진단 분야 시장 규모를 크게 성장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헬스 분야에서는 여러 전공 출신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의사과학자의 비중은 매우 높다. 세계 상위 10개 제약회사 대표과학책임자의 70%가 바로 이 의사과학자일 정도다. 지금까지 치료제도, 백신도 없던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확산하는 상황에서는 치료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에 대항할 신약이나 새로운 진단기법을 개발해낼 의사과학자의 중요성도 비약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좀 다르다. 기초의학보다는 임상 중심으로 인력을 양성하면서 생리학, 생화학, 미생물학 등에선 의사 출신 교수 비율이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인력 확보도 어렵고 기초 의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상대적으로 미흡해 연구지원도 부족해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만한 환경이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 아직 잘 갖춰지지 않았다. 화학, 생명과학 등 우리나라 기초과학 역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연구 성과들이 실제로 바이오산업이나 의료기술 발전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초과학과 의료 연구를 중개해줄 매개체, 즉 융합 연구를 수행할 의사과학자가 현실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필자도 진단 관련 전문 벤처기업을 창업했는데 상업화 과정에서 그에 따른 어려움을 경험했다. 연구개발이 끝나더라도 임상시험을 통과해야만 사용 승인을 받을 수 있는데, 참여해야 할 의사들이 치료에 바빠 협력파트너를 찾기 쉽지 않은 데다 파트너를 찾아도 필요한 만큼 시간을 공유하기 어려웠다.

코로나19는 전체적인 바이오·의료시장의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전환했다. 난치병, 불치병이 아닌 감염병의 예방과 진단이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도 전에 없는 성장을 보일 것이다. 당장 영국에서 코로나19 변종이 발견된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바이러스나 질병이 언제 생겨날지 지금 시점에서 확신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제적인 연구 그리고 여러 분야와 의료를 융합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희망찬 미래를 위한 백신, 즉 예방주사는 곧 이러한 의사과학자 양성을 장려하고, 또한 이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아닐까.

박준원 포스텍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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