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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과학칼럼] 과학기술인의 변명

한동안 카페에서 자취를 감췄던 일회용 컵들이 다시 눈에 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시행하던 공공기관 차량 2부제도 중단됐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맞아 국민의 안전이 더 시급했기 때문인데, 이와 함께 생활 속의 불편이 일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현대사회가 주는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 방식에 익숙해졌고,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일회용 컵을 받아들 때 ‘이래도 될까’라는 걱정이 생기다가도 ‘나 하나쯤이야, 획기적인 기술이 해결해주겠지’ 하는 기대로 무심히 넘기곤 한다. 과학기술자의 한 사람으로서 명쾌하게 ‘그런 걱정은 우리에게 맡겨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과연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지속 가능하고 풍요로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해결사가 돼줄까. 아직은 선뜻 답하기 어렵다.

IPCC(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가 지난 2018년 인천에서 채택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는 막연하게 느껴지던 지구온난화의 위기를 ‘10년 뒤’라는 명확한 시점으로 제시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사이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줄이지 못하면 해마다 ‘기록적’이라는 타이틀을 경신하는 산불이나 폭설, 폭우 소식을 접하게 될 수도 있다는 엄중한 경고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과학기술계도 각자의 분야에서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개발에 부단히 노력했다. 최근에는 연구자가 한자리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지구를 살릴 수 있는 기술이 화두에 오르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기계연구원도 에너지·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역량의 3분의 1가량을 투입해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달 초 발표한 초임계 CO2 발전 시스템 실증 성공 소식이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방부가 협력해 군 장비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물질 저감에 성공한 플라스마 버너 실증 사업 등은 이러한 노력이 실험실의 문턱을 넘어 사회까지 퍼져 나간 사례다.

이런 희소식이 매일같이 들려온다 해도 과학기술의 발전만으로 일거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기술이 쫓아가기는 지구 환경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온도는 평균 1도 증가했다고 한다. 인간의 활동이 이런 변화를 야기하는 동안 기술은 이 속도를 유의미하게 늦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저감 기술의 보급보다 더 빠르게 심해지는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있다.

제동력을 잃고 달려가는 지구라는 열차에 탄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작지만 소중한 실천일 것이다.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환경을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한 소년의 인터뷰를 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고 다른 이의 동참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절실함이 전해졌다. 언젠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어려웠던, 우리 모두가 동참해서 편리함을 버리고 안락함을 절제하며 생활문화를 바꿔 가는 일을 시작하기에 2020년은 더없이 적절한 시기일 것이다.

나 자신도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으니, 여러분 모두 안심하세요’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하나 확실한 것은 과학기술은 거들 뿐 우리의 해결사는 지구 위에 살아가는 한 자연인으로서의 ‘나’와 ‘우리’라는 것이다. 비겁한 과학기술자의 변명이다.

박상진 한국기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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