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이 예상치 못한 파문으로 번지고 있다. 중국 누리꾼들이 BTS의 발언에 대해 “국가 존엄을 건드렸다”며 비난하자, 방탄소년단을 모델로 앞세워 인기를 거둔 삼성전자와 현대차, 휠라 등 기업은 BTS 관련 게시물을 서둘러 내리며 ‘거리두기’에 나섰다.

방탄소년단은 최근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밴 플리트상’을 수상, 리더 RM(본명 김남준)은 수상 소감에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누리꾼들이 문제 삼은 부분은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다. 민족주의 성향의 중국 환구시보는 이러한 수상 소감이 “중국 누리꾼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중국 누리꾼들의 “국가 존엄과 관련된 사항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누리꾼 반응을 덧붙였다.

현지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기업들이다. 이러한 반발이 불매운동으로 이어질까 싶은 우려에서다. 중국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삼성 스마트폰 갤럭시 ‘BTS 에디션’이 판매를 중지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베이징 현대차와 휠라(FILA)에서도 BTS 관련한 웨이보 게시물이 사라졌다는 글이 게재됐다.

NYT는 “삼성과 휠라가 K팝 밴드(BTS)와 협력한 흔적을 없애며 거리를 뒀다”며 “이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이 중국 사람의 애국심을 쫓는 최신 사례이고, 불매 운동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삼성을 포함한 몇몇 유명 브랜드들이 명백히 BTS와 거리를 두고 있다”며 “이번 논란은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인 중국에서는 대형 업체들 앞에 정치적 지뢰가 깔려있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보도했다.

K팝의 글로벌 인기가 높아지며 동아시아 내에서 민족주의에 기반한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한류의 주요 시장인 동아시아는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서 민족주의 영향력이 강하게 나타나는 지역으로, 국가 사이의 갈등이 K팝 그룹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미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기습 방문으로 반한 정서가 들끓으며 현지에서 인기를 얻은 카라가 직격탄을 맞았다.

트와이스도 비슷한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9년엔 트와이스 멤버 사나가 아키히토 천황 퇴위 당시 올린 인삿말이 국내에서 논란이 일었고, 2016년엔 쯔위가 대만 국기를 들고 나와 중국 누리꾼들의 맹렬한 비난과 보이콧을 불러왔다.

국내외에선 이번 중국 누리꾼들의 반발과 비난이 ‘과민 반응’이라는 의견이 두드러진다. NYT는 이번 사태를 두고 “(BTS 수상소감은) 공공연한 도발이 아닌 악의 없는 말 같았다. 하지만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지체 없이 (BTS를) 공격하는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삼기 시작한 3세대 K팝 이후 과거에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다양한 해외의 사정을 모두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라며 “K팝은 국제 정치와 무관하게 전개될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왔다. K팝 안에서도 한국적 특성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K의 한계를 넘어 팝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중국 누리꾼들의 반응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 나라간 해석의 차이가 있어 갈등을 빚은 사례다. 젠더, 인종 등 윤리적 문제가 아닌 국가간의 이념과 갈등에서 문제가 일어날 때엔 일일이 대응하기 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K팝의 중요한 특성과 고유성을 살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방탄소년단은 현재 피처링으로 참여한 ‘새비지 러브’(Savage Love) 리믹스 버전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 1위, ‘다이너마이트’로 2위에 오르며 또 한 번 대기록을 달성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