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한일관계 전망
“외교정책 아베 계승” 천명…극적변화 힘들듯
“지지기반 약한 스가, 日 혐한정서 무시 못해”
“평화주의적 성격…대화 통한 상황관리 나설수도”
무파벌 등 변수로…“'지한파' 간사장과 관계 주목”
[헤럴드경제=강문규 기자] 일본의 ‘스가 시대’ 개막으로 악화일로이던 한일관계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지만 현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하다. 국내 일본 전문가들은 오는 16일 총리로 선출될 스가 요시히데 총재가 ‘아베 정부 2인자’로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외교정책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4일 중·참의원 양원 총회에서 자민당 총수로 스가 총재가 당선된 것은 변화보다 안정을 택한 결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때리기’를 주도한 아베 총리가 물러나고 일본에서 새 정권이 출범함에 따라 한일 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는 ‘신중한 기대’도 있다.
스가 총재는 ‘포스트 아베’ 경쟁에 뛰어들면서 아베 정권의 정책 노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고, 특히 외교정책에서 아베 총리에게 퇴임 이후에도 조언을 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상왕 정치’라는 일각의 우려도 제기하지만 스가 총재의 정치적 기반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과, 아베 총리의 ‘한국 때리기’ 등 외교정책이 국민적 지지가 여전히 높다는 의식한 대목이다. 주일대사 출신 전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스가 총재가 2인자로서는 굉장히 좋은 인재인데, 스스로 서기에는 아직 지지기반이 약한 상황”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뒤를 잇겠다고 자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가 총재의 역사 인식이 아베 총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스가 총재는 과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에 대해 “테러리스트”라고 말해 한국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스가 정부가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한일관계에 힘을 쏟을 가능성도 작다. 여기에 일본의 혐한 정서도 무시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전 고위당국자는 “일본 내 혐한 정서를 무시해서는 안된다”며 “(스가 총재 입장에서) 지금 한일관계를 개선한다고 나서다 실수하는 것보다는 혐한 정서 이용하는 게 훨씬 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한국에 대해 압박 정책을 고수한 아베 총리의 퇴장이 어떤 식으로든 한일 관계에 새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스가 총재가 파벌 정치 문화가 강한 일본에서 무(無) 파벌이라는 점과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라고 평가 받는 점도 눈에 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스가 총재가 아베 내각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는 하지만, 스가 총재 본인은 평화주의자 성격이 있다”며 “정치적 스승인 가지야마 세이로쿠가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했던 만큼, 스가 총재 역시 한국과의 정면 대결보다는 외교적 대화를 통한 상황 관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박정수 동북아국제정치연구원 연구위원도 “스가 총재 주변인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기”라면서 “스가 총재는 선거 직전까지 ‘지한파’로 알려진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간사장을 만나 주요 사안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자신만의 파벌이 없는 스가 장관이 니카이 간사장과 더 밀착해 국정을 운영하게 되면 아베 총리보다는 한국과 더 잘 말이 통하게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박지원 국정원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도 어느정도 연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의 대화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스가 총재가 일본 총리로 사실상 확정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첫 대면 정상회담이 연내 이뤄질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어떻게든 관계 개선에 나설수도 있지 않겠냐는 분석도 있다. 두 정상의 첫 만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올해 말 한국에서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한중일 정상회의나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에 열릴 예정인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이 회동할 수도 있다.